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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소설가(小說家)복덩이뉴스 이정표 학생작가(안양예고 3년)
이정표 복덩이뉴스학생기자  |  bok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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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12  20:58:28  |  조회수 : 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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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복덩이뉴스 이정표 학생작가는 사진 아래 맨 오른쪽 아기가 30년이 지난 뒤, 어른이 되어 사랑으로 낳은 아들이다.

독특한 자기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복덩이뉴스 이정표 학생작가는 어려서부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소설 <날개>를 쓴 작가, '이상(李箱)'에 버금가는 작가로 성장할 것으로 보여지는 기대주이다.

- 편집자 주

단편소설

小說家
- 맛있는 크루아상에 들어가는 것(가제) -

구에게나 슬럼프는 찾아온다. 슬럼프를 겪는 것은 길에 서 있는 가로등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도 한 번씩 슬럼프를 겪는다. 부부사이에도 슬럼프가 있지 않은가? 권태기라고. 백수들도 백수 생활에 슬럼프를 겪는다.

심지어 빵집 아저씨도 크루아상을 만들 때 설탕 대신 소금을 넣거나 하는 슬럼프를 겪는다.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힘들게 느껴지는 것. 헤밍웨이는 그런 슬럼프를 여행으로 이겨냈다.

헤밍웨이는 평생 번 돈의 거의 대부분을 여행을 하는데 썼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가난했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이 한국이라는 먼 땅까지 알려지게 된 건, <노인과 바다>를 비롯한 명작 소설들 덕분이고 그 소설들은 여행을 통해서 완성된 소설들이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상태인 것은(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아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게 되는) 여행을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경험 보다는 상상력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들이 더 많다고들 하지만은, 방 안에 쑤셔 박혀 있기만 한다고 글이 써 지겠는가.

나에겐 여행이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헤밍웨이는 아니지만, 그런 대소설가의 노하우를 따라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복덩이뉴스 이정표 학생작가
나는 지금 호미곶에 있다.

아귀를 쥐다만 청동 손가락 끝마다 앉아있는 갈매기들을 보고 있다.

칼바람이 불고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어, 툭 치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마음은 깃털 같이 들떴다.

얼마 만에 나오는 여행인가.

이 여행을 통해서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동해바다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는 여행을 계획했다. 부산으로 내려갈 때는 전주에 들러 비빔밥을 먹었고, 재수 없게도 주말이라서 길이 꽉꽉 막혀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부산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해변마다 들러서 겨울바다 위로 뜨는 해의 사진을 찍었고 그것들을 비교해보면서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위로 올라갈 때마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은 점점 사진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비교하니 그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거다. 무슨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아니고 말이야.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행에 주제가 있는 법이다. 그냥 옛 건물이나 위인의 생가에 들러서 한 번 휙 둘러보고는, “아~ 이런 사람이 살았구나!” 하고 나오는 것이 뭐가 여행인가.

주로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이 쓰는 사투리들을 귀담아 들었고 해변을 산책했다.

주제를 가지고 떠나온 여행은 뭔가 달랐다. 말로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뭔가 달랐다. 길에서 마주치는 벽돌 하나 사람 하나, 바람을 타고 도로로 넘어온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다 달랐다.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이나, 재밌어 보이는 것 아니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들을 수첩에 메모하고 사진을 찍었다. 수첩은 금세 빼곡해졌다. 카메라 용량도 금세 꽉 찼다. 여행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슬럼프를 이겨낸 것 같았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도 틈틈이 소설을 쓸 준비를 했다. 인물을 설정하고 사물 하나를 생각하고 그 사물과 연관 지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재미있는 사건도 몇 개 만들어냈다. 하지만 소설의 조각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자꾸만 엇나가고 튕겨져 나갔다.

사건과 인물은 만들었지만 인물이 어떻게 사건을 겪게 할 건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처음을 시작해야할지,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슬럼프는 없는 듯 숨어 있다가, 글만 쓰려하면 나타나서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와 문장들을 전부 흩어내고 도망가 버렸다.

짙은 보라색 하늘 아래로 연회색 구름들이 흘러다녔다. 수평선으로 천천히 기어가던 담배연기가 얼굴로 훅 끼쳐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담배연기는 수평선을 향해 퍼지다가도 내 얼굴을 치며 해변 시장을 향해 사라졌다.

내 앞으로 젊은 부부 한 쌍이 두꺼운 잠바에 목을 파묻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갔다. 나는 불씨가 깜빡대는 담배를 ‘퉷’하고 뱉었다. 어째선지 그 둘의 등 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기온도 낮아졌다. 어느새 해변에는 술을 마시고 휘청거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술은 슬럼프를 잊게 해준다. 슬럼프 뿐 아니라 수 많은 것들을 잊게 해준다.

갑자기 소주가 확 당겼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골목 사이로 들어가자 술집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끌리는 술집은 한군데도 없었다. 마음에 드는 술집을 찾아 점차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내 옆으로 어깨동무를 한 두 사람이 지나갔다.

   
 
저 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걸어가다 보니 두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두 남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는 하마처럼 심한 욕설을 주고받으며 서로 으르렁거렸다. 걸음을 멈추고 멀찍이 서서 둘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가다가 괜히 불똥이 튈 것 같아 멈추기도 했지만, 왠지 아련한 기분이 들어서 멈춘 것이기도 했다. 저렇게 싸우는 것도 서로 다 여유가 있어서 싸우는 것 아닌가. 여유가 없으면 서로에게 화조차 내지 않겠지.

아마 저 두 남자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소한 것으로 시비가 붙었을 것이다. 야구에서 류현진이 더 잘하나, 이대호가 더 잘하나를 가지고 시비가 붙지는 않았을까. 둘 다 잘하는데 ...

내 여행에는 어쩌면 여유가 없었을지도 ... 그러고 보니 한 곳에 오래 머무른 적이 있기는 했었던가. 어쩌면 소설이 써지지 않는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초조해져 여유가 없어진 것이 아닐까.

원래 여행이라는 것은 여유를 가지기 위해 하는 법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많은 것들을 보거나 혹은 풍경을 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런 면에서 보면, 내 여행은 잘못되어 있다.

두 남자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결국 다른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옆을 지나쳐 가야 하는 사람은 도망치듯 빠르게 사라졌다. 그 때까지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말려야하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둘 중 한 명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칼이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악!” 소리를 들은 남자가 칼을 휘두르려다가 움찔하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 틈에 다른 남자가 그 남자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밀친 뒤, 넘어진 남자를 마구 밟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 남자가 밟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나도 달려가서 구타에 동참했다. 넘어진 남자는 머리를 두 팔로 가린 채 신음을 흘리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우리는 사이좋게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칼을 휘두른 남자는 앞좌석에 타고 남자를 때린 나와 다른 남자는 뒷좌석에 탔다. 나와 남자 사이에는 우리가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경찰 하나가 더 끼어 탔다. 두 남자의 술과 땀 냄새가 곰팡이처럼 퍼졌다.

무덤덤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차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슬럼프를 극복하겠답시고 여행을 나와서는,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고 경찰차에 타다니.

갑자기 내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매우 부러워졌다. 그는 사람을 때린 이유라도 있지만 나는 이유가 없었다. 이유 없이 옆에서 싸움 구경을 하고 있다가 끼어든 것이다. 처벌을 받는다면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것 같았다.

후회감과 걱정에 취한 것 같았다. 경찰의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앉았을 때, 경찰은 이 자리에서 합의를 보겠냐고 남자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도 칼을 휘두른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사과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경찰서를 나온 뒤, 내 앞에서 터덜터덜 걸어가던, 나와 함께 그 남자를 구타한 다른 한 명을 불렀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인사를 하고는 뜬금없이 “별 희한한 사람 다보겠소.” 나는 웃으면서, “나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같이 골목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 병씩 앞에 둔 채 북어를 안주 삼아서 마셨다. 그는 연신 웃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 표정이 신경 쓰여서 그렇게 계속 웃고 있는 이유가 뭐냐 물었다. “재밌어서.” “뭐하는 사람이요?”

북어를 찢어서 입에 밀어 넣으면서, “작가에요.” 하고 대꾸했다.

“작가아? 작가라고오? 아니 작가가 뭘 빌어먹을라고 경찰서를 걸어들어 갈 짓거릴 한 거요?”

“그쪽도 같이 걸어들어 갔잖아요?”

남자는 씩 웃었다. 참 구수해 보이는, 시골 냄새 풍기는 미소였다.

남자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남자도 내 술잔에 병을 기울였다. 우리는 잔을 부딪친 다음에 동시에 들이켰다. “무슨 글을 쓰는 작가요? 소설을 쓰오?” 나는 북어를 찢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소설가다.

비록 등단 후 청탁이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매일 꾸준히 글을 쓰고는 있다. 그러니까 슬럼프 같은 빌어먹을 것도 겪는 것 아닌가.

아까 경찰서에 있을 때 내 입에서 거짓말이 물처럼 흘러나오는 걸 듣고 나 스스로가 놀랐다.

머릿속에선 글자들이 꽉꽉 차 있어서(혹은 텅텅 비어있거나) 아무 글자도 나오지 않는데, 입으로는 술술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슬럼프를 벗어낸 것이 아닐까?

나는 대꾸하지 않고 있다가, “아뇨. 여행칼럼을 써요.” 하고 툭 던졌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어를 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유럽에 안도라라는 나라가 있거든요. 알아요? 역시 모르는구나. 거기 가면 아쿠아비트라고 하는 술이 있거든요? 그게 감자로 담근 술인데 정말로 좋아요. 독하고, 맛이 정말 특이하죠. 칼럼에는 마치 양주에 무지개를 타 마시는 것 같은 맛이라고 써놨어요. 그 때 마침 비 온 뒤라서 하늘에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거든요.”

사실 아쿠아비트는 북부유럽의 전통술이다. 안도라라는 나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라의 전통술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도라가 유럽 북부에 있는지 동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아쿠아비트라는 것에 흥미가 생겼는지 그것에 대해서만 물었다. “그 유럽에는 술만 마시는 축제가 있던데. 거기서 마시나?”

“아뇨. 그건 맥주축제죠. 독일에 있는 ... 아~ 그러고 보니 독일에 갔던 것도 생각이 나네. 독일에 가면 히틀러가 연설했던 식당이 있어요.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곳이고 천장이 특히 높아요. 맛은 보장하고요.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나치스를 봤어요.”

남자는 눈을 끔벅거리면서 못 믿겠다는 듯이 물었다. “나치스는 2차 세계대전 때 다 사라졌지.”

“아니, 그 나치스가 아니라, 히틀러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구요. 나치스 홈페이지도 있는데. 뭐 그 사람들 앞에서 나치스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인도 밑에 아무도 모르게 산 채로 묻히겠지만. 같이 간 사람들과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이 들어오더라구요. 하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사람들이랑 스치기만 해도 화를 버럭 내는 것이 수상해서, 계속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글쎄, 몰래 테이블에 초콜릿을 내려놓더라구요. 그냥 초콜릿이면 몰라. 그게 한 때 독일을 혼란에 빠뜨린 초콜릿 폭탄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소?”

“어떻게 하긴요.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지. 뻥 하고 터지더라구요.” 남자는 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가 거짓말을 눈치 챈 것일까 조금 가슴이 철렁했다.

요즘 시대에 누가 폭탄 얘기를 믿겠는가? 아무리 술이 들어갔다고 해도.

“아니 근데, 요즘에도 폭탄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거요?” 역시나 남자는 못 믿는 눈치였다.

“거긴 독일이에요.”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분 좋게 남자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왔다.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여행 작가 행세를 하며 각국에 얽힌 거짓말을 남자에게 풀어놓았다.

내 이야기는 유럽부터 시작해서 러시아를 관통해 아시아, 북아메리카, 그 밑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를 돌아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여행 작가들 중에서 입지가 큰 거대 작가가 되어 있었다. 남자는 헤어질 때, 나 같은 유명작가와 함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얘기했다. 남자는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어물어물 넘기면서 결국 알려주지 않았다.

어차피 더 이상 만날 일 없을 테지만, 나중에 내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본다거나 한다면, 그래서 내 이야기가 거짓말인 걸 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어휴~ 부끄러워서 겨드랑이가 근질거린다.

   
 
그 이후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거짓말을 했다. 내 여행에서 솔직함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사소한 만남에서 조차 거짓말을 했고, 항상 가면을 만들어 썼다.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할 때는 “좀 싸게 주세요. 저 아이가 여섯인데 ...”

식당에선 “이모. 저 이번에 간신히 번 돈으로 온 거에요. 좀 많이 주세요.” 막 거지신세를 벗어난 사람인 척 하였다.

한번 거짓말을 시작하자, 비탈길을 내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큰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고 작은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편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내게 XX초등학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근처에 볼거리가 없어 여행객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그 곳 사람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들고 있던 카메라를 은근슬쩍 가방에 숨기면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손자가 운동회 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 학교의 선생이며, 마침 학교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당연히 나는 그 초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이구 선생이었어?” 하면서 웃었다. 할머니가 왜 선생이 학교에 있지 않고 밖에 있냐고 물을까봐 그에 대한 대답도 준비했지만,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자 이름을 알려주면서 혹시 알고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알죠. 담임인데 ...” 이번에도 할머니는 “어이구 담임이었어?” 하면서 웃었다. 할머니를 초등학교로 데려가면서 입에 발린 말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 녀석이 여간 총명한 게 아니라느니, 발표력이 좋아 항상 적극적이라느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느니,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한다느니 ... 기타 등등.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비행기를 띄워주는 것인가 싶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웃기만 했다. 다만 공부를 좀 못하는 게 걱정이라고 얘기했을 때도 “어린애가 못하면 어때, 잘 놀기만 하면 되지.” 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한테 공부 못한다고 다그치지 말라고 훈계를 했다.

할머니가 진짜 선생으로 믿어주자 정말 선생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그쯤 되니 스스로를 절제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연기자가 자신의 배역에 푹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어지는 것처럼 나는 진짜 선생은 절대 하지 않을 말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교장이 학생들한테는 착한 척 하는데 선생들은 엄청 갈굽니다. 거 참, 교장이나 되어가지고 위선이나 떨고 ...” “그 옆에서 거들어주는 교감은 더 바보죠. 교장이 무슨 출세의 지름길인가.”

“3반 여선생님이 정말 예쁜데 어떻게 말을 붙여보지를 못하겠네요. 연구실도 같고 자리도 맞은편인데. 저 참 한심하죠? 연애도 못하고 ...”

“아직 학생들이 어리잖아요. 그래서 말들을 너무 안 듣네요. 가끔 속이 답답하니, 터질 것 같아요. 할머니는 애를 많이 키우셨을 테니, 어린 애들은 어떻게 다뤄야할지 알고 계시지 않나요?”

할머니는 참 고민이 많은 총각이라며 무심한 듯 툭툭 한마디씩 던졌는데, 그것이 참 일리 있는 말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도착한 뒤, 할머니는 자기 손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운동장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무리를 가리키며 저기 있다고 말하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초등학교를 벗어나 한참을 걸어가자 갑자기 엄청난 흥분에 휩싸였다.

내가 이렇게 거짓말을 잘 했었나? 나는 길에서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나.

즉석에서, 초등학교 선생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인물의 갈등과 고민을 만들어내고,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나는 확신했다. 다시 펜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책상에 앉기만 하면 글이 술술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그 뒤로도 여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여행은 어느새 주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한 여행.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풍경들의 사진을 찍는 여행.

그런데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 그 순간, 그 짜릿하고 황당한 강렬한 경험 덕분에 슬럼프를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때 나는 소설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소설을 더 이상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설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중독되어, 마치 현실이 소설인 것처럼 행동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경찰서에 가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상황에 맞는 거짓말은 언제든지 지어낼 수 있었다.

소설이 별거인가? 내가 한 거짓말을 그대로 문자로 옮긴 다음에 문장으로 정제하면 그대로 소설이 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슬럼프라는 벽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벽을 넘어서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태.

여행 자체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행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주는 도우미였던 것이다.

헤밍웨이에게 깊이 감사한다.

헤밍웨이가 여행을 떠난 것은, 여행을 통해 강렬한 경험을 마주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나처럼 갑자기 뛰어가 누군가를 구타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암벽등반 같은 일을 하다가 미끄러져 죽을 뻔한 경험도 하고, 밀림에서 길을 잃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렬한 경험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했겠지. 나는 슬럼프를 극복했다.

올라오는 길에 군포에 들러 유명한 빵집을 찾았다. 한국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그 빵집. 안은 엄청나게 넓었음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빵들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30분을 기다려서 겨우겨우 크루아상 5개를 샀다. 가게를 나오며 바로 크루아상 하나를 꺼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정말로 맛있는 빵이었다. 어떤 식으로 만들던, 크루아상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이 제일 맛있다. 그 자리에서 크루아상을 다 먹어 치우곤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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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뉴스 이정표 학생작가 멋진보이!!
어느새 이렇게 컸나요,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훌륭한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헤밍웨이처럼 후세에 이름 남기는 훌륭한 소설가가 꼭 되세요, 약속~~~

(2014-11-23 20:36:43)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복덩이뉴스 이정표 학생작가

이정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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