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序文)

우리가 구법(求法)의 길을 걷는 이유가 무엇인가.

진리(眞理)를 추구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삶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고자 함이다.

먼 훗날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삶에 대해 눈뜨고자 함이다.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함인 것이다.

불법(佛法)이란 무엇인가.

바로 지금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의 눈을 뜨게 하는 진리이다.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인생고(人生苦)로부터 해탈케 하는 큰 길이다.

그 어떤 진리의 이론도 구체적 삶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부질없는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난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지금 여기를 떠나 특별한 곳에 존재하는 신비한 무엇을 뜻하지 않는다.

참된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

부처님은 분명하고 확고하게 말씀하셨다. "진리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나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볼 수 있고 실현되고 증명되는 것이다."

진리의 실천이란 언제나 지금 바로 볼 수 있고 실현되고 증명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매순간 일상적 삶으로 실현되지 않는 불교란 이미 관념화된 불교임을 의미한다.

연기(緣起), 중도(中道)의 진리가 구체적 삶이 되지 않는 것은 불교를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뜻한다. 그 귀결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관념화된 불교는 삶을 더욱 왜곡시킨다. 불교를 추상적으로 다루면 모순과 혼란이 더욱 확대된다.

이 책은 천년 전 참선 수행자들의 문제의식에 뿌리가 닿아 있다. 심장이 찢기는 아픔으로 쏟아낸 수행자의 절절한 신앙고백이다. 숨막히는 답답함을 어찌하지 못하여 토해낸 한국불교의 하소연이다. 관념화된 이론으로서의 자타불이(自他不二)가 아니고 온 세상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끌어안는 동체대비의 삶을 수행자의 삶이 되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