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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장군 신경자의 천축산 불영사 순례기수묵화를 닮은 불영사! 다시 가고 싶어라!!
신경자 복덩이뉴스기자  |  sinnogoji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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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2  18:08:48  |  조회수 :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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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를 닮은 불영사! ..

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불영계곡 ..

다시 가고 싶어라~ 라~ 라 ... ~.~ ...

28일(일) 07시, 증평군청 앞을 출발했다.

관광버스 안 TV뉴스에서 우리가 가는 경북은 오전부터 비가 내린다고 보도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 2016년 첫 성지순례를 날씨가 다 망쳐놓는군!

증평을 출발한 지 4시간 정도가 지난 11시 30분경 천축산 불영사 일주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온다고 한 비는 단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천축산 불영사는 ..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서쪽 산 등성이에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침으로 불영사라 하였고, 1968년부터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형국의 길지에 자리잡은 불영사는 조선 숙종때 인현왕후 불사의 은덕을 기리는 원당(願堂)과 아울러 왕후에게 현몽하였다는 양성당선사를 비롯하여 전염병으로 급사한 현령 백극재가 부인 이씨의 지극한 기도공덕으로 환생하였다는 설화 등 수많은 불사공덕의 역사를 안고 있다.

   

하늘은 비 온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따뜻한 봄날씨를 선사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한없는 부처님 가피와 자비를 느꼈다._()_

   
 
천축산 불영사 일주문에서 사찰경내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어르신들과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사찰에서 제공한 차로 가고, 우리는 장난하며 신나게 걸었다.

길 옆 계곡의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 너무 좋다!!’

   

젊고 팔팔한 사람들은 일주문에서 불영사까지 걸어갔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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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걷다보니, 눈앞에 연못으로 둘러싸인 불영사가 펼쳐졌다.
1천 6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古刹)의 정기가 느껴졌다.

사찰 앞 연못으로 모였다. 부처님(佛)이 연못에 비친다(影)하여 불영사(佛影寺)라 불리워졌기 때문이다.연못을 자세히 보니 과연 서 있는 부처님 모습이 보였다. 신기했다.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불영지(佛影池) - 서쪽 산 등성이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쳐 환호와 탄성을 자아냈다.

   

바위 사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가면서 보면 산등성이가 부처님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불영지에 그대로 비치고 있다.

   
 
사찰앞에 드리워 져 있는 연못과 주위를 걷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 같았다.

대웅보전에서 삼배를 드렸다.

대웅보전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여기 저기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어 신기했다. 구슬처럼 영롱한 아주 작은 구슬들이였다.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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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좀 더 휠링하고 싶었으나 벌써 가야할 시간이다.

조진하 불자가 팥죽 묻은 나한님을 꼭 봐야한다며 웅진전에는 들리자고 제안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대웅보전 왼쪽에 위치한 웅진전에 가 삼배를 드렸다. 응진전은 나한님들을 모신 곳이다.

이웅재 사무국장이 어느 나한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먼저 나갔다.

   

나한님들을 모신 응진전

- 팥죽이 묻어있는 나한 이야기 -

갑오년(1892) 동지(冬至) 날.

불영사 공양주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동지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살펴보니 불씨는 꺼지고 재만 남아 있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절 안에 남은 불씨는 없고, 언제 불을 지펴 죽을 쑬 지 공양주 스님은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스스로 자책을 하던 스님은 불씨를 얻기 위해 아랫마을 휘씨 댁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씨가 꺼져 불씨를 얻으러 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스님에게 휘씨 댁 노인이 말했다.

“새벽에 웬 어린아이가 절에 불씨가 꺼져 부처님께 팥죽공양을 못 올리게 되었으니 불씨를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불씨를 얻으러 온 아이가 하도 추워하기에, 팥죽 한 그릇 주었더니 다 먹고 돌아가던데요. 아니 아무리 불씨가 없어도 그렇지 춥고 어두운 새벽에 불씨를 얻어오라고 어린아이를 보내면 되겠습니까.”

공양주 스님은 노인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급히 절로 돌아갔다.

절에 도착해 공양간에 들어가니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던 것이다.

공양주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나한성중”을 외치며 팥죽을 쑤었다.

공양주 스님은 팥죽공양을 올리기 위해 나한전으로 갔다.

여러 나한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중의 한 나한상의 입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동지가 되면 팥죽을 쒀 올리고 기도를 하고 있다.

*나한(羅漢)이란 ... 번뇌·속박에서 벗어난 아라한을 말한다. 아라한은 범어 아라하트(arahat)의 음역으로 보통 줄여 ‘나한’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한자(漢字)로 응공(應供)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나와 조진하 불자는 삼배를 올리고 이웅재 사무국장이 삼배를 올린 나한님의 입주위를 유심히 보았다.

입주위에 팥죽은 없었다. 수염만 보였다. “수염을 팥죽으로 잘못 봤나?”모셔져 있는 모든 나한님들을 유심히 보았으나 전설에 나오는 팥죽 뭍은 나한님은 없었다.

나중에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이 사무국장에게 팔죽묻은 나한님을 보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마음으로 보았단다.” 믿거나 말거나한 대답 아닌가?~.~^^

시간관계상 나올 때는 사찰 봉고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주차장 옆 식당에 도착했다. 먼저 가신 어르신들은 이미 비빔밥을 드시고 계셨다.

   

맛과 친절로 우리들 마음을 사로잡은 불영사 식당. 강추!!

이재유 기사님이 미리 예약을 한 덕분이였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8그릇의 비빔밥이 상위에 올라왔다.

반찬도 더 달라고 하고, 수자타가 먹을 계란후라이도 부탁하는데도 남자주인은 항상 웃는 얼굴로 응대하고 친절을 잃지 않았다.

주인아저씨때문에 더욱 맛있는 점심이 되었다.

점심을 마치고 바닷가 망양정으로 향했다. 망양정은 불영사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관동팔경중의 하나이다.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편액을 하사할 만큼 관동팔경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고 한다.

망양정에 도착했다. 대나무숲길을 지나 망양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보았다. 가슴이 탁 트였다. 힘찬 바다소리도 들려오고 해안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망양정(望洋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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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증평으로 향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하더니 진눈깨비가 두둑~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오늘 성지순례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순례자들은 불영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불영계곡의 비경에 대해 감탄 하였다. 거기에 망양정까지 갖다와서 좋았다는 이야기 등으로 꽃을 피웠다. 건의사항으로는 불영사에 머무는 시간이 좀 짧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단양쯤 오니 눈이 무척 많이 내렸다.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는지 ... 일기예보에는 오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순례하는 동안에는 눈이나 비가 오지 않았다. 불영사에서는 단 한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고 그저 따뜻한 봄날이였다. 얼마나 다행인지 ... 어르신들과 아기들이 찬 겨울비를 맞았다면 ... 폭설을 보면서 저절로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한없이 나왔다.

2016년 모든 성지순례가 오늘처럼 부처님가피가 늘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마음이 열려
운명이 멋지게 바뀌고 있는
소녀가수 출신 개선장군
불제자 개선심 신경자 두손모임_()_

   
◇백마산 괴력소녀 - 개선장군 개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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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날이장삿날
김동진 선생님께서 [사천년간조선俚語해석]이라는 65쪽 간행물(1927년)에

절친한 친구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여러 해를 만나지 못하였다.

하루는 한 편에서 열 일 다 제치고 친구를 찾아가 보니 그 친구는 며칠 전에 죽어 마침 그 날이 장사(葬事)를 지내는 날이었다.

시속(時俗)에서 공교롭게 된 일을 "가던 날이 장날이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장날'은 '장삿날'이 와전된 것이다.
<선인들이 전해 준 어원 이야기> 김동진 저, 조항범 평석 태학사 에서 재인용


이것을 보면 장날은 시장(市場)서는 날이 아닌 장삿(葬事)날을 의미합니다.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아쉽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2016-03-24 12: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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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불자성지순례단 재무
신경자 010-3404-3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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