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뉴스
널리 알림^ ..알림^두타 제일!
진악산 보석사ㆍ천태산 신안사ㆍ홍범식공원ㆍ개삼터공원(충남 금산) 성지순례 후기증평수행불자회
복덩이웅재 복덩이뉴스기자  |  boknews@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10.31  13:35:24  |  조회수 : 163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10월 30일(일), 증평수행불자회는 진악산 보석사·천태산 신안사·홍범식공원 등을 순례하였습니다.

♤높고 높은 푸른 하늘, 따뜻한 가을 햇살, 가슴 미어지는 홍범식 선생 이야기와 홍범식공원, 1천5백년전 처음으로 산삼씨앗을 사람이 재배한 개삼터와 그곳에 만들어진 개삼터공원, 가을정취로 물든 절, 멋진 보석사 전나무 길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비스런 은행나무, 맛있는 아침^점심^저녁 공양, 오겹살 수육, 능이 백숙, 방안에서 옛날식으로 먹던 보석사 점심공양, 바쁜 짬을 내어 마셔본 인삼막걸리, 심신이 편안한 신안사와 사찰 전각 앞 잔디, 스님들의 사자후 - 지혜의 말씀, 금산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 ...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홍범식공원 -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 ... 이날은 홍범식 금산군수 순국일이기도 하다. 홍범식공원에 걸려있는 순국열사 일완 홍범식 군수 추모제 현수막
   
 군수홍공범식순절비
   
 일완 홍범식 선생의 애국·애족·애민사상을 기리는 묵념을 하였다.
   

일완 홍범식 선생

일완(一玩) 홍범식(洪範植) 선생은 1871년 7월 23일 충북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에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일완, 자는 성방(聖訪)이다.

선생의 가문은 사도세자 비빈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 집안으로 조선후기 대표적인 명문가 가운데 하나였다.

조부 홍우길은 한성부 판윤, 이조판서 등을 지냈고 부친 홍승목은 이조참의, 병조참판, 궁내부 특진관 등을 역임했다.

선생은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902년에는 내부 주사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들어섰다.

이후 혜민원 참서관 등의 관직에 있다 1907년 태인군수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태인군에서는 아전들의 탐학이 심했을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의병전쟁과 관련하여 무고하게 잡혀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태인군수로 부임한 선생은 의병부대를 진압하려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를 설득하여 무고한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힘썼다.

나아가 군수로 재직하는 동안 일체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음은 물론, 황무지 개척과 관개 수리사업을 시행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이에 감동한 군민들이 마을마다 송덕비를 세워 그 수가 38개에 이르렀다.

1909년 선생은 금산군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도 국유화될 위기에 놓인 백성들의 개간지를 사유지로 사정하여 주는 등 위민행정(爲民行政)을 폄으로써 칭송이 자자했다.

선생은 금산군수로 재임 중에 ‘한일합방’ 조약 조인 소식을 듣고 ..

“아아, 내가 이미 사방 백리의 땅을 지키는 몸이면서도 힘이 없어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니 속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탄식 하였다.

8월 29일 경술국치일, 선생은 객사 뒤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자결 순국하였다.

선생은 장남(벽초 홍명희)에게 보낸 유서에서 ..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던지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고 당부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일완정 - 일완은 홍범식 선생의 호
   
 
   

 진악산 자락에 있는 개삼터공원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자 진악산 관음굴에서 정성을 들여 모친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현몽하여 “관음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3개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달여 드려라”는 계시가 있었다.

그곳을 찾아간 강처사는 과연 그러한 풀이 있어 뿌리를 캐어 모친께 달여 드리니 모친의 병환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강처사는 그 산삼씨앗을 심어 재배에 성공했고, 인삼재배에 성공한 이곳 개삼터에 2012년 개삼터공원을 개장하였다.

   
 
   

 강처사가 꿈에서 산신령을 만난 것을 형상화하여 놓았다. 거의 모든 산신령들은 미인들과 호랑이를 끌고 다닌다.

미인들과 호랑이 밥은 어떻게 챙겨 주시나? 호랑이가 배고파 못견디면 어쩔려구 ... 호랑이는 그렇다쳐도 미인들 잠자리와 의복은 제때 챙겨는 주시는지 ... 설마 앵벌이를 시키는 것은 아니겠지 ...

장날 호랑이하구 미인들을 끌고 산에서 내려와 약팔아 사시는 것은 아니겠지 ...

산신령님들을 볼때마다 어떻게 산속에서 사시는 지 걱정이다. ^^;

   
 
   
 
   
 강처사 집에서 따사한 가을햇살을 쬐다.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의 진악산 기슭에 있는 보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로 885년(헌강왕 11)에 조구대사가 창건했으며,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근처에서 캔 금으로 불상을 주조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운치 있는 전나무 길이 나오고, 절 안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인 대웅전과 승병장 영규대사가 머물던 의선각이 남아 있다.

지금의 대웅전 건물은 임진왜란 중에 소실된 것을 대한제국 고종때 명성황후가 다시 짓도록 한 것이다.

명성황후는 이 절을 중창해 왕실의 원당으로 지정했다.

1912년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전라북도 일원에 있는 33개의 말사를 관장했다. 당시에는 금산군이 전라북도에 속해 있었다.

석동리 마을사람들 말에 의하면 현재 보석사가 있는 곳으로부터 200m 위에 있는 영천암 자리가 원래 보석사의 절터였다고 한다.

절 입구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사의 순절비가 있으며 그 옆에는 1980년에 임창순이 역술하고 이곤손이 쓴 영규대사의 선각비가 있다.

보석사는 대한민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이 은행나무는 창건주인 조구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뜻에서 6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라고 하며,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길 때는 나무가 운다고 한다.

   
 대웅(서가모니부처님)을 뵈려면 범종각 밑으로 해서 올라가야 한다.
   
 아담하고 이쁜 절 - 보석사!!
   
 보석사는 명성황후(민비) 원찰이다. 산신각(山神閣)은 명성황후 오빠 민태후의 글씨이다.
   

 그 유명한 보석사 은행나무 - 은행나무 여섯그루가 연리목이 되어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여섯그루는 개산조 조구 대사와 다섯제자가 심었는데, 육바라밀(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을 상징한다.

   
 
   
 
   

 천태산(신음산) 신안사(身安寺)

신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천태산 국사봉 서쪽 자락 아늑한 터에 넉넉한 마당을 들인 고즈넉한 절집이다.

이 절의 이름에 ‘몸 신’ 자가 들어간 것은, 경순왕(재위 927∼935)이 천태산 동쪽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사(충북 영동)에서 수학할 때 이곳에서 가끔 머무른 데서 유래한다.

이 절집의 앉음새와 물 맑고 아늑한 주변 산세에 반한 경순왕은 “이곳에 있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고 해서 ‘신안사’라 이름 지은 것.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진향각(眞香閣)·요묵당(寥默堂) 등의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즐비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병화로 소실되어 지금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극락전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대광전·요사채가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상 또한 원래는 10여기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었을 때 태고사(太古寺) 등으로 옮겨 봉안하였으므로 현재는 5기뿐이지만, 그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은 조선시대 불상의 걸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전성기에는 3,000명의 승려가 수학하였다고 하며, 불경과 불기(佛器) 등 여러 가지 비품이 많았으나 6·25 때 모두 소실되었다.

절 앞에 있는 연못과 폭포, 20리에 뻗친 계곡은 경승지로도 유명하다.

   

 "세상은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눈앞에 보이는 모든 법(실체)은 단지 인연따라 일어나는 것일뿐...

거기에는 '나'도 없고 느끼는 자도 행위하는 자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착한 일이건 악한 일이건 그 업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 유마경
 

   
www.boknews.com

< 저작권자 © 복덩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복덩이웅재 복덩이뉴스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이웅재
010-3434-0707

박상은
010-5491-0815

신경자
010-3404-3892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복덩이뉴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증평리 58  |  대표전화 : 010-3434-0707  |  팩스 : 010-3404-389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웅재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충북아00068  |  등록년월일 : 2011년 8월 26일  |  발행인 : 김정자   |  편집인 : 김정자
Copyright ⓒ 2011 복덩이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k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