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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달성사 참배,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ㆍ천사대교 방문 후기2019년 4월 7일(일) 07:00 달구지 출발~~~
신경자 복덩이뉴스기자  |  sinnogoji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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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8  14:58:51  |  조회수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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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일) 07:00 전남 목포 최대사찰인 유달산 달성사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도로와 휴게소에는 봄꽃을 보러 떠나는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가득했다.

4시간을 달려 목포에 도착했다.

달성사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깍아지를 듯 급경사를 오르니 진입금지 팻말과 시민경찰이 보였다.

봄꽃축제가 열려 차량진입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달성사를 가는 길이며 6살 여아와 여든이 넘은 어르신이 타고 계신다. 차를 통과시켜달라’고 하니, 통과시켜 주었다.

좀 더 오르다 보니 봄꽃축제 현장이 보이고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 바위앞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웠다.

눈앞에 보이는 바위는 ‘노적봉’이었다.

노적봉은 ..

임진왜란 당시 바위에 이엉(볏짚)을 덮어 군량미가 많아 보이게 하여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지혜로운 전술로 유명한 유달산의 대표명소이다.

말로만 듣던 노적봉을 보니 신기하다.

축제무대에서는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다들 무대로 뛰어가 잠시나마 축제의 분위기에 빠져보았다.

무대 뒤로 목포 시내가 한눈에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서인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아늑했다.

노적봉 맞은 편에 이순신 장군 동상과 오포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동백꽃이었다.

붉은 동백꽃과 노란꽃술의 자태가 참으로 곱다.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여인의 단아한 모습인 듯.....

꽃한송이 통째로 툭 떨어지는 동백꽃, 생의 마감이 이런 모습이면 어떨까? 잠시 감상에 젖는다.

달성사에 도착했다.

사찰 입구에는 작은 규모의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새로웠다.

달성사는 일주문이 없다.

‘달성사’라 새겨진 돌만이 입구를 표시한다.

높은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사찰이 보인다.

사찰의 주변은 석축으로 둘러 있었다.

   
 ◆유달산 달성사 입구
   
 
   
 
   
 
   
 
석축밑에 싱싱한 상추가 자라고 있었다. 상추를 보니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났다.

왼편으로 범종이 보였다. 범종의 저녁 종소리는 목포 8경 중의 하나이다.

범종 주변을 돌아보니 낡은 당목(범종을 치는 봉모양의 막대기)이 한편에 놓여져 있었다.

오랜 세월 범종의 종소리를 책임졌을 당목, 세월의 흔적을 엿본다.

계단을 오르니 오른편으로 종무소와 공양간이 보였다.

이어 왼편으로 계단을 오르니 극락보전과 지장전이 위치했다.

   
 
극락보전을 뒤로하고 앞을 내려다보니 목포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가슴이 탁 트였다.

4채의 건물이 단순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어 자칫 밋밋하고 평범한 사찰이라 생각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목포시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달성사에 잘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극락보전에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극락보전
   
 
들어가 삼배를 올렸다. 법문이 끝나 아쉬웠다.

사찰순례의 백미는 명산대천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 자체가 주는 좋은 기운과 더불어 스님의 주옥같은 법문을 듣는 것이다.

주지 도정스님께서 신도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계셨다.

진행되는 행사에 방해가 될까봐 절도 10배정도 하고 앉아 법당을 둘러보았다.

법당 중앙에 자리한 주불과 협시불은 사찰마다 다른 분위기다.

야무지고 단단해 보였다. 주지스님의 모습과 닯은 듯...... 흥미롭다.

천장의 구조와 단청의 모습, 연등이 자그마하고 귀여웠다.

신도회장의 인사말을 끝으로 신도들은 공양간으로 향했다.

다시 자리를 잡고 절을 올렸다.

사찰순례를 할 때마다 법당에서 108배를 하기로 원(願)을 세운 터였다.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아 몇 번 올리지 못하고 법당을 나와야 했다. 아쉬웠다.

   
◆달성사 뒤로 보이는 산이 그 유명한 유달산이다.
   
 
목표 시내와 극락보전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아쉬움에 지장전에 재빠르게 들어가 삼배를 올렸다.

지장전앞에는 “목포시 최초 보물지정 2011호”란 플랑이 붙여 있었다.

‘목포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명종 20년인 1565년 수조각증, 향엄 등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해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삼존 등 19구로 이루어진 대단위 불상군이다.

이 불상은 임진왜란 이전에 조성된 불성조각 중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이 모두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특히 지장보살삼존상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릅 위에 올린 반가 자세를 취한 것으로 조선전기엔 드문 형식이다. 희소성이 있고 조형미가 뛰어나다.

조성연대와 반가상이라는 희귀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 조선시대 초기 불교조각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지장전에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이 일괄적으로 보물 2011호로 지정되었다. 
   
 
달성사를 출발해 손혜원 의원으로 유명해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창성장으로 향했다.

거리로 들어서니 낡고 쇠락한, 오래된 1, 2층건물이 골목 골목 형성돼 있었다.

점심은 꽃게무침으로 유명한 장터식당에서 하기로 했는데 정기휴일이었다.

급히 주위 맛집을 검색, ‘초원대중음식점’으로 향했다.

식당안은 손님들로 꽉차 있었다.

다행이 자리가 있었다. 뒤이어 들어온 손님들은 서서 기다리다렸다 자리가 남으면 좌석을 채우곤 했다. 맛집은 맛집인가보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바깥을 자주 내다보았다. 잔뜩 흐려있던 하늘이라 혹 비가 내리지 않을까 걱정돼서이다.

모처럼 마음먹고 창성장을 왔는데 둘러보지도 못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결국 도로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6살 서우는 출발부터 배타령을 했는데 비가 와 유람선도 뜨지않을 거 같다. 서우한테 미안했다.

30분이 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반찬을 보니 역시 남도 음식이다.

전어젓, 병어조림, 톳무침, 갓김치인 듯한 열무김치 .....

따뜻한 국내산 갈치구이는 고소하고 갈치 본연의 맛이 살아있었다.

꽃게살을 발라 양념에 버무린 꽃게무침덮밥은 입안에서 살살녹았다.

역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은 그 지역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일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맛있다며 게눈 감추듯 그릇을 싹싹 비워나갔다.

너무 맛있어 두세번에 걸쳐 반찬 리필을 부탁했다.

기가 막힌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남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음식맛이라서?

그것은 기본일게고, 음식을 따뜻하게 해서 바로 먹을수 있게 한 점이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음식 하나를 내놓더라도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성은 모든 일의 기본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근대역사문화공간 - 창성장 투어도, 유람선 타기도 비로 인해 취소되었다.

급히 주위에 가 볼만한 곳을 검색했다.

인근 삼학도권역에 있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과 천사대교를 투어하기로 결정했다.

목포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각종 사료와 영상자료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는 평화와 화합의 전당이다.

기념관은 5대양 6대주를 상징하는 건물로 6개의 돌출된 부분이 6대주를 상징하며, 물을 채워둔 곳은 5대양을 의미한다.

이러한 건축은 대통령의 평화정신이 5대양 6대주 - 세계를 향해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 건축된 것이다.

기념관 2층 전망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하의도에서 목포로 이사와 학상시절을 보냈던 영신여관 터와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이난영의 수목장이 있는 난영공원을 바라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 자료사진
   
 
전시동에 들어서니 1층에 기념관 후원자들의 이름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벽면이 눈에 띄였다.

남북정상회담 자리가 연상되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그 옆에 김대중 대통령이 오른손을 내밀며 웃고 서있다.

그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맞은 편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 캐릭더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 ”

기념관 2층은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운무에 싸인 유달산 .. 기념관 옥상에 올라보니 바로 유달산이 코앞에 있다. 참으로 멋진 위치에 기념관을 세웠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국내외 축하와 환영의 메시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주요업적, 김대중 대통령의 출생에서부터 정치 입문과정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겪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 ..

특히 5번의 죽을 고비를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로 제작한 사실감 있는 영상이 펼쳐져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사랑의 완성은 인내입니다."

- 오정혜 주례사 中

 

제4전시실에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5년간의 임기동안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8개 분야로 정리 전시하였고, 관람객이 대통령이 되어보는 체험공간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대통령의 어록이 전시된 방이었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안 하면 됩니다.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면 힘이 커집니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됩니다.

하려고 하면 너무도 많습니다.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는 길도 있습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 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맙니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합니다."

-2009년 6월 12일 6.15 선언기념행사 위원들과 점심식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좌우명이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것인데 위의 글은 그 좌우명을 그대로 펼친 글이라 생각한다.

기념품 매장에서 아이들에게 줄 생일선물로 김대중 볼펜과 ‘세계를 품는 세계인이 되어라’란 제목의 수첩 그리고 손수건을 샀다. 무척 좋아하겠지~.^^

   
 ◆"나는 비판을 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지켜 왔습니다. 하나는 먼저 상대방의 입장이나 장점을 인정해 주는 비판,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방의 인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하는 비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장점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상대방은 비판을 자기에 대한 비난으로 생각하고 수용해 주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1993년 12월,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인생의 목표를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값있게 사느냐에 두어야 한다. 자기가 값있게 살려고 애쓴 일생이었다면 비록 운이 없어서 그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하더라고 그 사람의 일생은 결코 실패도 불행도 아니다. 값있고 행복한 일생이었다고 할 것이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기념관 투어를 마치고 천사대교로 향했다.

지난 4일 개통한 천사대교는 국내에서 4번째로 긴 교량길이를 자랑하며 신안 중부권 4개면(자은, 안좌, 팔금, 암태)을 육지와 연결하는 7.2km(총연장 10.8km)길이의 교량이다.

천사대교에 가까워질수록 맞은 편 차선의 차가 많이 밀리고 있었다. 개통한 직후라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천사대교에 진입했다.

비와 짙은 안개로 다리 양옆의 신비로운 섬과 바다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으나, 다리의 모습과 탑의 모습은 오히려 신비로운 자태를 뿜냈다.

천사대교는 국내 최초로 단일교량 구간에 사장교(교각위에 세운 탑에서 비스듬히 드리운 케이블로 주빔을 지탱하도록 설계된 교량)와 현수교(교각과 교각사이에 철선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이줄에 상판을 매어단 교량) 공법이 동시에 적용됐다 한다.

주탑의 높이가 195m! 처음보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주탑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술이 정말 뛰어나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에 도착해 잠시 머물며 다리교각을 뒤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공주밤도 사먹었다.

암태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소작농민항쟁으로 유명한 농민운동의 역사가 존재하는 곳이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집으로 돌아갈 길은 멀고 ..

잠시의 휴식을 마치고 천사대교를 다시 건너 증평으로 향했다.

순례는 삶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드는 자양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 하루였다.

즐거운 하루였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근대역사문화공간 - 창성장 투어를 하지 못한 점이다.

지난 2월 시작한 증평도시재생대학생으로서 창성장을 보며 도시재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근대역사문화공간 - 창성장을 보러 다시한번 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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