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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토) 20:10 KBS 독립투사 "연미당" - 조국으로 가는 길!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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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1  15:45:35  |  조회수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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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한국방송은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특집 <독립투사 연미당>을 4월 13일(토요일) 밤 8시 10분부터 KBS-1TV를 통해 UHD로 방송합니다.

충북 증평 출신으로 ..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연병환, 연미당, 엄기선의 가족이야기를 역사스토리텔러 설민석의 중국 현지 임시정부 루트 촬영과 드라마 재연을 통해 재미에 감동을 더한 역사다큐멘터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립투사 연미당>은 KBS청주총국(총국장:이강현)이 1년의 제작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에 제작에 정성을 쏟았고,

청주지역 배우들이 출연하여 지역정서를 녹여내는 연기를 선보여 보는 재미에 감동을 더할 것입니다.

■ 담당 : 문봉서PD(010-5151-2369 / mbs@kbs.co.kr) 이선이작가(010-9426-4011 / leesl3@hanmail.net)

※기획 의도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뜨거운 활약상을 펼친 독립운동가 연미당.

그녀의 시선으로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녀와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뛰었던 임시정부 요원들은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조국으로 가는 길을 꿈꿨을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독립투사 연미당>에서는 역사스토리텔러 설민석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길을 걷는다.

로그라인 : 만약에 임시정부에 숨은 조력자가 없었다면 김구가 이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의 꿈을 이루어 살아서 조국에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독립투사 연미당
–조국으로 가는 길 -

◇방송 일시 : 2019. 4. 13(토) 밤8시10분 ~ 9시(50분), KBS-1TV(전국방송)

연미당의 아버지 <연병환>은 충북 증평 출생이다.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 해관에서 일했고, 1907년 정미7조약이 늑결되자 공직에서 사퇴했다.

1908년 청주 군수로 발령받았으나 취임하지 않고 중국 용정으로 갔다.

그 후 동생 3명도 불러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연병환은 용정해관에서 번 돈으로 중학교를 설립하고 군자금을 댔다.

당시 연병환의 집은 지역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고, 청산리대첩에 숨은 공로가 있다고 전해진다.

일제는 1919년 3월 13일 용정 만세시위의 책임을 물어 연병환을 체포했다.

옥고를 치르고 난 후 상하이로 옮겨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연미당의 숙부 <연병호>는 19세인 1913년에 형 병환이 있는 용정으로 갔다.

그 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세계한인동맹회에서 활동했으며 만주에서는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1937년 상해에서 체포된 후 국내로 압송되어 해방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연미당>은 1908년 북간도 용정촌에서 태어났다.

연미당은 아버지로부터 투철한 민족교육을 받았다.

연미당의 남편 <엄항섭>이 보성법률상업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만세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 후 프랑스 조계 공무국에 근무하면서 임시정부에 일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상하이청년동맹회 집행위원, 임시정부 헌법 개정 기초위원, 한국교민단 의경대장 등으로 활동했다.

연미당은 1927년 19세에 10살 연상인 엄항섭과 결혼했다.

이후 청년여자동맹, 애국부인회, 한인여자청년동맹에서 후방사업 지원 및 선전활동을 했다.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가 일어났는데 연미당이 도시락 폭탄을 싼 보자기를 직접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윤봉길의사 의거 후 임시정부는 상하이 ⇒ 항저우 ⇒ 난징 ⇒ 창사 ⇒ 광저우 ⇒ 류저우 ⇒ 치강 ⇒ 충칭으로 일제를 피해 다니는데, 연미당은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정 요인들을 모시며 8,000km 임시정부의 대장정을 함께 했다.

연미당의 딸 <엄기선>은 중국방송을 통해 임시정부의 활동상황과 일본군의 만행을 동맹국과 국내 동포들에게 알렸다.

또한 중국내 수용소의 일본군 포로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사병들을 위문하고, 광복군 합류를 유도했으며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는 선전공작에 진력했다(초모활동).

연미당은 애국부인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면서 충칭방송에서 반일의식을 고취하고 국내외 여성 동포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방송을 했다.

1945년 광복 후 엄항섭은 김구 주석과 함께 환국했고, 김구와 함께 통일된 정부 수립을 위해 활동했다.

그러나 김구는 흉탄에 의해 서거했고, 김구 선생의 평생 동반자였던 엄항섭은 장례식 때 추모사를 읽고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엄항섭은 납북됐다.

연미당 가족은 서울에서 월북가족으로 오해받으며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연미당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경제적 어려움과 과로로 갑자기 찾아 온 중풍으로 23년 여생을 병마와 싸우다가 1981년 73세에 서거했다.

엄항섭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납북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됨으로써 정부는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보이지 않게 활약한 독립운동가 조명
독립운동사에서 여성의 존재와 활약상은 남성에 가려 소외당했으며 잊혀져 왔다. 또한 연병환, 연병호 등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아 ‘그림자 독립운동가’로 불리는 분들의 독립운동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독립운동
이념 갈등, 분열과 혼란에 빠졌던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계에서 연미당은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독립운동 단체의 화합을 도모했다.

연미당의 시선에서 한국 독립운동사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 한국의 어제, 오늘, 내일을 조망
독립유공자 5명을 배출한 연미당 집안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역시 존재한다.

연미당의 동생인 연충렬의 밀정 행각, 남편 엄항섭의 납북, 손자들의 중국과 북한 거주, 남편의 납북으로 인한 고통 등 연미당 가족의 삶은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다큐를 통해 우리민족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연미당과 엄항섭의 결혼사진(상하이 1927년)

☞김구, 안창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이 사진이 보여주듯이 연미당 가족사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8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연병환 지사(201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전장 시절(1936년)

☞뒷줄 왼쪽 첫 번째가 연미당. 옆은 남편 엄항섭, 어린이는 모두 연미당 자식이다. 2남 4녀를 임시정부 이동을 따라 각각 다른 지역에서 출산했다.

 

   

3·1절 기념공연을 마치고(1938.3.1 중국 창사)

☞뒷줄 왼쪽에서 9번째가 연미당, 앞줄 4번째가 장녀 엄기선

 

   
김구 장례식 때 추모사를 읽는 엄항섭(1949년)
 
   
 
   

◇독립운동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 그리고 본인 역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분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태동부터 광복의 그날까지 고난의 길을 함께 했고 독립운동유공자가 5명이 배출된 가족의 중심 - 연미당(1908 ~ 1981)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연미당과 그 가족의 행적을 추적하고 그 뜻을 기리는 일은 독립운동 역사의 소중한 기록이다.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성, 묵묵히 임시정부를 지겼던 여성 독립운동가, 연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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