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뉴스
홍보^&^PR알림^PR^백운
경순대왕 어진(御眞) 봉안 및 범공(梵空) 선사 다례재 - 『환귀본처(還歸本處), 천년의 귀향』 순례 후기13일(토) 10:00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海印寺) 대적광전(大寂光殿)
신경자 복덩이뉴스기자  |  sinnogojiri@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7.17  11:10:49  |  조회수 : 19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해인사 순례소식을 듣고, 몇 주전부터 설레였다. 해인사는 둘째 지선행(박재선)이 초등학교 1학년 때(2009년), 같이 순례했던 사찰이다.

 

 

 
지선행 박재선
(충북여고)
첫째 원업(박재준)과 둘째 지선행의 생일이 음력 3월 3일 삼짓날과 음력 3월 1일로 이틀 간격이다.

원업과 지선행의 생일선물로 '삼천배'를 하기 위해 해인사를 찾았던 것이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토요일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예불 전까지 8시간여에 걸쳐 3천배가 진행되었다.

지선행은 180배하다 잠이 들었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3천배를 하고, 백련암 스님으로부터 '심공인(心空忍)'이라는 불명(佛名)을 받았다.

10년 전 삼천배를 했던 해인사, 간다간다하고 가지 못했던 해인사!!

드디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到來) 하였다.

복덩이법당 진각심 김정자 포교사(복덩이뉴스 발행인)로부터 2019년 7월 13일(토) 오전10시30분~ ‘경순대왕 어진 봉안 및 범공 선사 다례재’가 [사]범공선사숭선연구회(회장 김근학)와 나주김씨종친회중앙회(회장 김시호) 후원으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거행된다고 들었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것. 지금의 행복을, 지금의 기회를, 지금의 인연을 미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연이 닿으면, 그것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생각을 갖고 최대한 그 기회를 잡으려 노력하게 된 것이다.

해인사가 멀다보니 아침 일찍 7시경에 출발했다.

10년 전 해인사 갈 때는 3시간 넘게 걸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비검색을 하여보니 2시간 30여분 소요되는 것으로 떴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라는 걸 실감했다.

괴산으로 해서, 연풍IC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달렸다. 선산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또 달려 성주톨게이트를 통과 했다.

10시 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에 도착했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
경순대왕 어진 봉안 및

범공 선사 다례재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다. 화엄경의 주불은 비로자나 부처님이다. 비로자나(Vairocana)는 영원한 법(法), 곧 진리를 상징한다. 비로자나부처님과 문수보살(우측), 보현보살(좌측)을 모시어 큰법당 이름이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 앞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대적광전 안에도 많은 스님들과 범공선사숭선연구회와 나주김씨종친회중앙회 임원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영단에 모셔진 경순대왕 어진

 

김근학 [사]범공선사숭선연구회장이 감동적으로 고유문을 낭송했다.

"이번 경순왕 어진 제작과 봉안은 지난 2007년부터 노력해 12년만에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함께 추진해 주신 해인총림방장 원각 큰스님, 해인사 주지 향적 큰스님, 미타선원 해덕 스님 그리고 애써주신 여러 스님들과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봉안되는 어진은 한국 전통서화공예 대명장 백미자 화백이 그린 이모작(移摸作)입니다. 천년만에 경순왕 어진이 최초 봉안처인 해인사로 귀환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가치와 의의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순대왕 어진 봉안 및 범공선사 다례재

고유문(告由文)

불(佛) 법(法) 승(僧) - 삼보(三寶)에 귀의(歸依) 하오며 ..

불기 2563년 7월 13일(토) [사]범공선사숭선연구회 회장 김근학을 비롯한 우리 사부대중은,

오천년 한민족의 자랑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호국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어진(御眞)인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 경순대왕 어진을 천여 년 만에 환귀본처(還歸本處)하는 봉안식과 더불어,

이 어진을 봉안했던 대왕의 계자(季子) 황(湟)왕자 - 범공선사(梵空禪師)의 다례재를 봉행하게 된 것을 부처님과 대왕님영정에 옷깃을 여미며 합장 돈수하고 삼가 고(告)하나이다.

나아가 부처님과 해인총림의 자비광명이 온 누리에 퍼지고 그 광영이 천추만대에 계계승승하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이 어진이 해인사에 환귀본처하게 된 경위는 ..

삼국을 통일하여 우리나라의 기본 틀을 만들고, 세계사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천년왕국 신라 흥망이 유수하여 쇠망의 길을 걷게 되자 경순대왕께서는 백성들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하고 경천순민의 대의를 실천하고자 935년 천년사직을 신흥 고려에 평화적으로 손국(遜國)하는 세기적 결단을 내리어 이 땅에 전쟁과 대립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안정의 길을 열었지만,

태자 일과 계자 황은 “천년 사직을 어찌 하루아침에 남에게 넘겨 줄 수 있겠는가”하고 극간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자 통한 속에, 태자는 개골산에 솔처자하고 들어가 마의초식으로 종신하니 후세에 마의태자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계자도 충절(忠節)을 지켜 처자를 속세에 두고 부왕의 어진을 해인사에 봉수하고 범공스님이 되어 국민통합, 중생제도에 정진하다 열반(涅槃)에 드시니 조정에서는 의영공(懿英公)의 시호를 내리고 그 충효정신을 후세 길이 기리도록 하였습니다.

범공께서 봉수했던 어진은 해인사에 화재가 발생하자 영천 은해사에 옮겨 모시어져 있다가 1778년(정조3년) 대왕의 묘전(廟殿)인 경주 숭혜전으로 이봉하여 내려오다,

2008년 당시 숭혜전 김병호 참봉의 발의와 나주김씨 종친회 김근학 회장 등의 자료 협조로 “2008년 경주문화원 학술대회”와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한국미술사학회 학술세미나(경주대 정병모 박사)”에서 최고의 어진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에 기증되어 보존 중에 있습니다.

대왕의 어진이 최고의 어진으로 밝혀진 이후 (사)범공선사숭선연구회 김근학 회장 등 나주김씨 종친회 간부들이 최초 봉수처인 해인사를 수차 예방하여 방장 원각 대종사님, 주지 향적스님, 박물관장 서봉스님께 헌의(獻議)한 바 마침내 시절인연이 영글어, 어진이 천년 만에 본래 자리로 봉안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봉안되는 어진은 1904년 화승 이진춘이 모봉한 것을 한국 전통서화공예 대명장 백미자 화백이 이모하여 천년 만에 봉안하는 것입니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나눔의 향기는 천리를 가며, 덕의 향기는 세세손손 영원히 이어진다고 합니다. 이 덕향은 바로 평화적으로 천년 사직을 고려에 손양한 대왕님과,

충절과 갸륵한 효심으로 부왕의 어진을 해인사에 봉수하여 최고의 어진으로써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게 한 범공선사 부자 분을 이르는데 지당한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상 역대 13개국에 367왕이 재위해온 중에 어진을 봉안한 묘전이 전국도처에 제일 많은 여섯 곳이 있는 임금님은 경순대왕이 유일하며,

망국의 왕자로서 영락(零落)하지 않고 덕 높은 스님이 되시어 삼국유사 등 사서에 기록되고 기려지고 있는 분은 범공선사 뿐입니다.

이번 어진 봉안과 다례재 봉행을 계기로, 천 년 전 이 땅에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와 통일을 성취한 대왕님의 경천애민의 혼과 범공선사의 사려 깊은 충효 정신이 영원히 기려지고,

한 뿌리지만 광복 후 70여년 동안 세계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어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 성찰하고,

부처님의 가호와 대왕님의 보우로 우리의 꿈과 소망인 평화와 통일이 실현되어 “평화롭고 풍요로운 통일한국,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다시 탄생하기를 기원하면서 삼가 고유문을 올리는 바이오니 굽어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불기2563. 7. 13.

사단법인 범공선사숭선연구회
회장 김근학 합장 돈수

해인총림방장 원각 큰스님은 법어(法語)에서 ..

“범공 선사께서 천년전에 가야산으로 출가하면서 부왕(父王)이신 경순왕의 어진을 모시고 왔습니다. 부친(父親)인 동시에 신라의 마지막 왕이 되어버린 그 어진(御眞). 경순왕은 마지막 왕으로서 물려줄 나라가 없는 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이상 나라를 보전할 수가 없다. 이미 강해질 수 없고 또 더 이상 약해질 수조차 없다. 죄 없는 백성들의 간과 뇌장(腦漿)이 땅에 쏟아지게 하는 일을 나는 차마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했고, 더불어 한없는 애민(愛民)정신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이 경천애민정신(敬天愛民精神)으로 신라천년의 종묘사직과 문화유산이 단절 혹은 파괴없이 그대로 고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어진과 위패를 모시어 왕의 공덕을 기렸던 것입니다.”

원각 큰스님은 “경순왕의 진정한 참 모습은 무엇이며, 경순왕의 주인공(眞我)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는 화두(話頭)를 던지시며 법어를 마치시었다.

   

 ◇법수사지

 

돌아오는 길에 범공 선사가 주석하시던 법수사지를 둘러보았다.

법수사지는 서기 802년 통일신라시대에 금당사란 이름으로 창건했고, 고려 때 이름이 법수사로 바뀌었다.

한 때는 해인사와 쌍벽을 이루었다한다.

해인사를 좀 지나, 도로변에 3층 석탑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고, 절터만 남아 있다. 일부 축대, 당간지주 그리고 기와편이 보였다.

비범한 산세(山勢)와 절 터 앞으로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어마어마한 사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3층 석탑은 수리를 위해 가려져 있었지만, 거대한 기단의 모습만으로도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순대왕 어진(御眞) 봉안 및 범공(梵空) 선사 다례재 - 『환귀본처(還歸本處), 천년의 귀향』 에 동참하면서 경순대왕의 냉정한 현실인식과 애민정신, 대왕의 아드님이신 범공 선사의 효심(孝心)을 만날 수 있었다.

멀고 먼 옛날옛적의 역사가 다가오고, 멀고 먼 옛날사람들의 마음이 살아있음을 느낀 보람찬 하루였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대적광전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동참하였다.
   
 
   
 ◇비로자나부처님(중앙)과 문수보살(우), 보현보살(좌)
   
 ◇경순대왕 어진
   
 ◇대적광전 벽화
   

 ◇대적광전 벽면에 고행주의를 끝낸 수행자,
고타마싯달타에게 유미죽을 올리는
수자타(善生)가 이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고타마싯달타는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

   
 www.boknews.com
   
 ◇해인사성보박물관
   

 ◇경순대왕 어진은 법회 후
성보박물관으로 이운되었다.

김근학 회장이 
어진 봉안 및 범공 선사 다례재에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경순대왕 어진 - 해인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된다.
   
 
   
 
   
 ◇법수사지
   
 www.boknews.com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656호)
   

 ◇산세가 대단하다.

과거에는 해인사에 버금가는 대사찰이였다.

   
 
   
 
   
 
   
 
   
 
   
www.boknews.com

< 저작권자 © 복덩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신경자 복덩이뉴스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복덩이뉴스 신경자
취재부장 010-3404-3892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복덩이뉴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증평리 58  |  대표전화 : 010-3434-0707  |  팩스 : 010-3404-389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웅재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충북아00068  |  등록년월일 : 2011년 8월 26일  |  발행인 : 김정자   |  편집인 : 김정자
Copyright ⓒ 2011 복덩이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k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