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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 보살 오빤 영웅이였고 전설이였다!”2020.12.20.(일) 증평행복교육지구 휴먼아카이브 사람 그리고 사람 - 박호명 비대면 콘서트
신경자 기자  |  sinnogoji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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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29  14:30:50  |  조회수 :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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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여고시절 ..

당시에는 성당을 다녔는데, 같이 성당을 다니던 박호명 오빠는 우리들 우상이였고 영웅이였다. 

호명 오빠는 ..

하모니카를 불며 기타를 쳤는 데, ‘꿈의 대화’ 같은 노래를 부르면 우리들은 "뿅~~~.^"하고 극락을 갔다.

곽동철 신부님이 주임신부로 계실 때, 여름방학 끝나고 ‘장미의 밤’이라는 고등학생들 축제가 있었다.

‘장미의 밤’ 행사 때는 호명 오빠를 보기위해 성당이 미어터졌고, 행사가 끝나도 수 많은 여학생들이 남아 계속 앵콜을 외쳤다.

나는 수~ 많은 여자들로 오빠 가까이에는 못가고, 멀리서나마 오빠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 했다.

   

 

여고시절, 호명 오빠는 ..

우리들 우상이였고 영웅이였다

전설이였고 신화였다 

 

당시 뉴스에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 호메이니 옹 이름이 많이 나왔다. 호명이 오빠이름이 호메이니하고 비슷해 애칭으로, '호메니 오빠'라 불렀다.

오빠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오빠의 노래는 전설과 신화가 되어 늘 우리 입에 오르내리었다.

추억 속 호명 오빠를 다시 만났다.

복덩이뉴스 김정자 사장님 팔순을 맞아 헌정곡(獻呈曲)을 만들어 받치기로 했다.

이웅재 편집실장이 ‘부모님을 닮아가네’라는 시(詩)를 지어, 호명 오빠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노래는 ‘보강천 향토가수’로 불리는 내가 했다.

*취재부장 주(註) : 2013824() 보강천 미루나무숲에서 송해 선생님 사회로 열린 전국노래자랑 [증평군]편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보강천 향토가수로 자리를 굳히는 듯 했는데 .. 한 어깨에 두 짐 못진다고 .. 복덩이뉴스 취재부장하랴~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하랴~ 뛰어다니다보니 .. 아직 못다핀 꽃한송이로 .. 인생의 노을을 맞이하고 있다.-_-;    

   

복덩이뉴스 신경자 취재부장
(보강천 향토가수ㆍ대한불교조계종 개선심 포교사)

녹음을 위해 오빠 스튜디오로 가 늘 그리웠던 오빠를 만났다.

나는 한 일도 없이 ‘팍’ 늙었는데, 오빠는 연예인 냄새가 ‘팍’ 나는 중년의 멋진 가수가 되어 있었다.

열심히 불교공부를 하고 있을 때여서인지 오빠 이름에서 불교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수자타처럼 ..

서가모니 부처님이 인간세계에 오시기 전, 하늘나라(도솔천 내원궁)에 계실 때 호명(護明) 보살로 불렸다. 그래서인지 불교에서는 호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호명(護明)이라는 뜻은 수행하는 중생들을 보호하고, 깨달음의 길을 밝혀주신다는 뜻이다.

물론 박호명의 호명과 호명 보살의 호명이 서로 다른 한자라 해도 내겐 똑같은 느낌!^^; .. 멋지게 머리를 기른 것도 도통한 도인(道人) 같고 ..

*취재부장 주(註) :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불안견불유/佛眼見佛矣~.^^; .. 신자눈에는 예수님만, 불자눈에는 부처님만~.^^; 

   
2017.3.6(월) 호명 보살 오빠 스튜디오
   
 

호명 보살 오빠는 ..

싱어송라이터로 1990년대 MBC가요제에서 “나의 손을 잡아요”로 얼굴을 알린 라이브 지향적 음악인이다. 앨범 ‘아리 아리랑(ARI ARIRANG)’도 발표하였고 포크 발라드, 블루스 록, 펑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사/작곡/편곡을 하는 가수로 (사)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이사이기도 하며 양희은의 ‘참좋다’, 인순이의 ‘하나의 꿈’, 이광조의 ‘사랑인거죠’ 등 많은 히트곡으로 사랑 받고 있다.

   

◇호명 보살 오빠는 .. 비대면 콘서트를 시작하면서, 오빠가 작사/작곡한 '참 좋다!'를 들려주었다. 오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들 우상이고 영웅이다." 

 

12월 20일(일) 호명 오빠가 청주의 새로운 명소 ‘존버카페(ZONE Ver 1.0)’에 온다고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오빠를 응원하기위해 이웅재 편집실장, 오빠 절친 이충재님와 그의 아들 정표 등도 함께 했다. 이웅재 편집실장은 호명 오빠 성당 선배로 아주 가까운 사이다. 문예창작을 공부한 정표는 오늘 콘서트에서 줌(ZOOM)으로 만나는 형석중학교 학생모임에서 글쓰기를 지도하는 선생님이다.

호명 오빠는 ‘증평행복교육지구 휴먼아카이브 사람 그리고 사람’ - 첫 번째 콘서트에 초대 받아 온 것이다.

원래 계획은 형석중학교 학생모임에서 학교 선배인 호명 오빠를 초대해 콘서트를 열기로 했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원칙이라 줌(ZOOM) 영상을 통해 화상으로 만났다.

   
 ◇호명 오빠 가로되, "꿈을 꾸라! 그리고 그 꿈에 도전하라! 그 꿈을 이루기위해 소통하고, 교류하라!"
   
 

오후 2시~ 줌(ZOOM) 영상 화면에 형석중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자, 박상은 마을활동가의 사회로 콘서트는 시작되었다.

호명 오빠는 증평 출신 실력파 라이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소개되었다.

오빠는 화면에 비친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오빠 전체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꿈을 꾸라! 그리고 그 꿈에 도전하라! 그 꿈을 이루기위해 소통하고, 교류하라!’

*신경자 취재부장(개선심 포교사)의 주장 : 행동으로 옮긴 꿈은 설사 실패해도 - 현실과 꿈과의 차이, 갭(GAP)을 알 수 있어서 - 희망을 잉태하지만, 행동하지않았던 꿈은 번뇌망상(煩惱妄想)으로 둔갑 - 좀비로 진화 - 끝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그러니 실패 할 수도 있지만, '도전하는 것'이 백 번 천 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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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음악을 기본으로, 락 느낌이 섞인 그런 거!’ - 나의 장르를 정하니 마음이 부동(不動)했고, 마음이 부동하니 겉모습도 바뀌고 사람들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좀 더 세세하게 오빠 이야기를 정리하면 ..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빨리 찾고 끊임없이 그 우물을 파야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기타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수의 꿈을 펼치고자 서울로 대학을 갔다.

그런데, 엥~ ..

서울에 있다고 생각한 대학이 수원에 있어 얼마나 황당했던지 .. 그래서 주말마다 서울로 가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취재부장 주(註) :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는 성균관(조선시대 국립대학)이 있는 서울 명륜동에 있고, 자연과학캠퍼스는 경기도 수원에 있다. 오빠가 전공한 건축학은 수원 자연과학캠퍼스에 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복학을 하지 않고, 대학가요제 출전을 목표로 기타 하나 메고 쌀과 고추장, 라면만 걸머지고 설악산으로 떠났다. 산에서 10일 간 치열한 음악수련을 하고 서울로 왔다.

역에서 내려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에 비춰진 형형한 나의 눈빛,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자신감. 그 패기로 대학가요제에 출전, 서울 대표로 본선까지 진출 했다. 가수로 첫 발을 내딛는 도전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여타 많은 가수들과 교류를 하지못했던 것이다. 그 친구들이 그 당시 “너, 생긴대로 놀아~”하면서 끼워주지 않았는데, 훗날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서로의 장르가 달라, 같이 할 수가 없으니, 너는 너의 장르에 맞게 놀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다시금 힘을 얻어 나의 장르에 대해 고민했다. ‘포크음악을 기본으로, 락 느낌이 섞인 그런 거!’ - 나의 장르를 정하니 마음이 부동(不動)했고, 마음이 부동하니 겉모습도 바뀌고 사람들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제일 중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부추겨, 도전하는 것이다. 

‘세상은 다 이어져 있어 이어진다.’는 말처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건 친구다. 친구를 많이 사귀려면 칭찬을 많이 해라. 내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도 중학교 2학년 때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난 건 데, 그 중 한 친구가 응원해 주러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충재 친구는 딴지 거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그래서 아마 내가 창작을 하지 않았나 싶다. 친구를 칭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찾아오기도 하고, 걸러지기도 하고 ..

내가 친구한테, 친구가 나한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 

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면 ..

첫째, 꿈만 꾸지 말고 꿈을 이루기위해 도전하자!

둘째,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타인의 재능을 칭찬하자. 친구를 칭찬하면 가족처럼 될 뿐만아니라 내 재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셋째, 사회생활의 무기는 재능, 끼와 더불어 교류이다. 친구들, 동생들, 특히 부모님하고 친밀하게 마음을 열고 자꾸 얘기를 해야 한다."

이야기가 끝나고 학생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질문 : 음악을 하시게 된 계기는?

■ 박호명 : 초등학교 4학년때 집에 하모니카가 있어 하모니카를 불었고,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기타가 있어 기타를 잡았다. 부모님이 끼가 좀 있었다. 노래도 좀 하셨다. 형들도 노래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시작 했던 거 같다.

◇질문 : 작사/작곡하고, 연주에 참여하시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은?

■ 박호명 : 천 만원 이상 들여 연주자들 불러 거의 다 녹음을 했는데, 가수가 갑자기 이 키가 좀 낮아요 올려주세요 했던 일. 또 노래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전해 줬는데 그 분이 안 부르고 엉뚱한 사람이 부르는 경우. 예를 들어 ’참 좋다‘ 같은 경우인데 .. 다른 사람한테 먼저 줬는데 양희은 선배님이 듣고서 ‘야, 이 노래 참 좋다!’ 그래서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에피소드 하나는 백령도라는 큰 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비 때문에 못 나왔던 일, 울릉도 공연 가서 ‘아리 아리랑’ 노래 부르고 거기서 3일 동안 묶여 있었던 일 등 ..

◇질문 :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 박호명 : 가장 애착 가는 곡은 아무래도 내가 스스로 부른 ‘아리 아리랑’이다. 이 노래는 인순이 선배님께서도 가사를 조금 바꿔 ‘하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는 하나요’ 주테마는 이런 노래인데, 우리나라 역사를 갖고서 가사를 썼는데, 평창 올림픽 때 이 노래를 쓰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동쪽바다 버티는 어둠을 뚫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막내둥이 독도가 기지개 켜면 백두대간 힘차게 나래를 편다~~’ 여기서 독도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못쓰게 됐다. 애착이 가는 노래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노래 - 그 중 하나가 이 ‘아리 아리랑’ 노래가 아닌가 싶다.

◇질문 : 지금까지 만드신 곡은?

■ 박호명 : 컴퓨터에 보니까 350곡 정도다. 곡을 많이 쓰기 시작한 때가 한 6년 전쯤 되는 것 같다 그 전에는 내 스스로 하고 싶을 때만 해서 두 달에 한곡 쓰여질까 말까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성인가요뿐아니라 여러 장르를 쓴다. 4살(박예빈), 8살(박서빈동) 아이들이 있어서 돈 좀 벌어야 된다. 내 노래만 갖고는 요즘에 잘 들어주지 않는다. 여러 장르를 쓰다 보니까 다작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곡을 많이 쓰는 사람이 - 히트작곡가 말고는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다.

◇질문 : 주로 어디서 영감(靈感)을 얻으시나요?

■ 박호명 : 질문하는 학생, 지금 입은 안보이고 코 위에서부터 보이는데, 그거 하나로도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마치 머리카락 스타일이 멀리서 보면 도토리 같다. 동요로 만들어 보면, (즉석에서 기타치며 부름) ‘마스크를 끼면 도토리 얼굴, 머리가 상고머리 됐네’ - 어디든, 어느 곳에서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이디어는 수 없이 많다. 아이디어는 세상에 깔려있다. 지금 이 현장에도 .. 지금 여러분들 얼굴에도 ..

◇질문 : 하나의 곡을 만들 때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 박호명 : 주 아이템은 5분 또는 10분 안에 만들어 질 수 있지만, 그것을 정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것을 타인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고 앨범까지 나오게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 달에서 육 개월 이상은 걸린다. 그리고 이 곡이 지금 이 시기에 나와야 되는 지, 이런 것도 잘 살펴봐야 된다. 그래서 만들어 진 지 2년만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 .. 중요한 건 항상 집중하고 있는 거다.

◇질문 : 작곡가란 직업이 원래 돈을 따박따박 못 받는 직업이잖아요? 돈이 필요해서 음악이 아닌 알바를 하신 적이 있나요?

■ 박호명 : 옛날에는 노래만 잘하면 누군가가 나의 재능을 쉽게 봐줬는데 요즘은 안그렇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야 된다. 나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장르는 - 이건 필수로 계속해야 하는 거고, 또 하나는 남들을 위한 장르 - 나의 음악재능을 돈과 교환하는 거, 그게 알바라고 할 수 있다.

◇질문 : 작곡가로서 목표는?

■ 박호명 : 질문자가 내 노래를 아는 거, 그게 목표다. 내가 만든 노래를 수정이가 알면 된다. 그런데 모르쟎아 .. 작곡가를 몰라도 너희들이 아는 노래 중에 내가 만든 노래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질문 : 작곡가의 장점은? 단점은?

■ 박호명 : 단점을 가장 많이 말씀 하신 분이 아버지였다. “불안정한 수입을 갖고 있는 그런 직업을 뭣하러 하느냐? 언제까지 할거냐?” 그래서 매번 아버지한테 거짓말을 했다. “딱 1년만, 딱 1년만 하겠습니다.” 그게 몇 년? 거의 30년 되었다. 고정수입이 없어, 자생(自生) 해야 된다는 강한 마인드가 필요하다. 이건 모든 창작자들에게 해당 된다. 강한 마인드가 없으면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점은 창작하는 동안은 남들과 상관없이 나만의 세계에 빠져서 나만의 꿈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다. 끝없는 자유로움! 그리고 잘하면 세상에 내 존재를 가장 크게 알릴 수 있고 .. 스티브잡스처럼 ..

◇질문 :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나요?

■ 박호명 :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개구쟁이였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 대학에서는 건축설계를 할까 하기도 했다. 공부는 특출나게 잘하진 못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딱 한 번, 같은 학년에서 나 혼자 수학 100점을 맞았다. 왜냐면 그 때는 거기에 딱 집중했다. 재미가 들리면 뭐든 잘 할 수 있다.

◇질문 : 집중하니 100점 나왔다는 얘기를 들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굉장히 많은 재능들이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 얘기가 확 와닿았어요.

■ 박호명 : 맞다! 눈빛이 살아 있어 희망적이다.

◇질문 : 아까 노래중에서 ‘아리 아리랑’노래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들을 수 있나요?

■ 박호명 : 그런데 이 노래는 검색해서 들어야 할 거 같다. 왜냐하면 이건 기타로 표현하는 노래가 아니다. 라이브로 하기가 힘들다.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 너무 장엄해서 집중이 안되면 안된다. 여러분들이 ‘박호명 아리 아리랑’ 이렇게 유튜브에 검색을 하면 된다. 그러면 이런 노래를 저 박호명 가수가 만드셨구나, 그리고 불렀구나 알 수 있다.

◇질문 : 작별 노래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 박호명 : (안경을 끼고 기타를 치면서)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그리고 즉흥으로 만들어 볼텐 데 짧게 갈게요. ♪♩“윤준열, 윤건열, 황연주, 노대영, 선생님은 건너뛰고, 홍해준, 전정, 이재민, 김민영, 신주환, 이우진, 장세정, 그리고 다른 게스트 이충재, 성찬진,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이 또 올까요, 만나서 행복했어요, 우리 다음 약속해요, 밥먹자’♪♩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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