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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 김득신 시비 제막식 거행!2012.9.11(화) 11:00, 증평읍 율리 백곡 김득신 문학공원
복덩이웅재 복덩이뉴스기자  |  bok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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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12  12:13:04  |  조회수 : 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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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곡 김득신 문학공원 가는 길~.~
   
 율리마을회관 뒤로 200미터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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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곡 김득신 문학공원 시비 제막 행사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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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곡 김득신 묘는 문학공원(시비/詩碑)바로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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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곡 김득신 묘
   
 가선대부 안풍군 김득신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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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영순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 증평지부장
   
 유병택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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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대학교 신범식 교수(문학박사)
   
 홍성열 증평군수
   
 박석규 증평군의회의장
   
 김봉회 충청북도의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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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를 보시고 ...
   
 하나 둘 셋!!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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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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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 뒷면 ...

 

증평군이 낳은 조선 중기 시인이요, 문장가인 백곡 김득신 선생 시비 제막식이 햇살이 따가운 11(화) 오전 11시, 증평읍 율리 백곡 김득신 문학공원에서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회장 유병택)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 증평지부(지부장 나영순) 주관으로 거행됐다.

유병택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장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유병택 회장은 경과보고에서 백곡 김득신 문학공원 조성에 힘을 써 준 홍성열 군수와 충청북도의회 김봉회 도의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영동대학교 신범식 박사는 백곡 김득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며, 백곡 김득신을 소개했다.(아래글 참조)

홍성열 증평군수는 치사에서 안동 김씨인 백곡 김득신의 후예들이 백곡 김득신을 닮아 증평구석구석에서 큰 일을 해내고 있다며, 김봉회 도의원/ 김재룡 군의원/ 김재성 노인회장/ 김장응 예총회장/ 김길자 시인 등 안동 김씨 인사들을 소개했다.

박석규 증평군의회의장은 백곡 김득신은 실학자로 유명한 정약용 선생이 극찬한 인물이라며 이런 분을 증평에서 모시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김봉회 충청북도의회의원은 자신이 안김(안동 김씨)이라 이야기하기 힘든 것을 유병택 한국문인협회 충북회장이 앞장서서 이런 훌륭한 문학공원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유병택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장은 백곡 시비에 실린 밤티골(율협/栗峽) 낭송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참가자들은 기념촬영을 하고, 율리회관에서 따뜻한 점심을 함께 했다.

   
 유병택 회장이 백곡의 시, '밤티골'을 낭송하고 있다.
   
 안김(안동 김씨)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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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 정훈섭 사무국장은 오른쪽으로 ...!! 
   
 "아~ 균형이 제대로 잡혔습니다. 오~ 하면 이~ 하세요!! 오!! 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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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각자 기념촬영!!
   
 백곡 김득신 문학공원에서 바라본 밤티마을(율리)

  <영동대학교 신범식 교수(문학박사)>의 '백곡 김득신' 소개 글

백곡 김득신은 17세기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입니다. 즉 당시 문학을 논하면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백곡이 사셨던 시대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이 이어지던 국난기와 그 후의 북벌운동이 벌어졌던 우리 민족의 시련기였습니다. 백곡이 남긴 《백곡집》은 그 당시 우리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인 것입니다.

백곡은 우리나라 문학사상사에서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당대의 유학자들과는 달리 유학은 물론 불교, 도학까지 겸섭하였고,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수식이나 인공적이지 않고 타고난 성정과 천기에서 나온 것을 추구하면서 18세기 이후 조선적인 시풍의 선구가 되었다는 점이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간략하게 생애와 문학을 말씀드리면,

백곡은 1604년(선조37)에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와 사천 목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684년(숙종 10)에 81세로 서거하셨습니다. 본관이 안동이고, 자는 자공이며, 호는 백곡입니다.

백곡의 집안을 보면,

증조인 김충갑부터 할아버지인 김시회, 아버지 김치 그리고 백곡까지 내리 4대에 걸쳐 문과에 합격한 유수의 가문이었습니다. 훗날 김시회의 막대 동생 김시민(진주대첩)이 자손이 없어 백곡의 아버지 김치가 양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백곡의 출생지는 서울, 목천, 괴산 등의 여러 설이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설은 청당입니다. 청당은 청안을 말하는데, 백곡이 어려서 부친과 청당현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백곡의 부친을 장사 지낸 곳도 이곳 청당현 율협이므로 이는 백곡의 근거지가 바로 청당현이었음을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또한 백곡의 아버지 김치의 생가 친형으로 청안현 삼성당(오늘날 증평)에 살던 김급으로부터 글을 배웠다고 전해지는 바, 백곡의 출생지는 바로 증평 내성동 삼성당이 가장 유력하다 하겠습니다.

백곡은 어려서 천연두를 연거푸 앓아서 몹시 노둔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독서로 그 노둔함을 극복하였으니, 백곡이 36년간 고문을 읽고서 독서한 수를 기록한 <고문36수 독수기>에는 만 번 이하로 읽은 것은 기록하지 않고 만 번 이상 기록한 책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읽은 <백이전>으로 무려 1억 1만 3천 번을 읽어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라고 명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글을 읽은 백곡은 결국 당시 한문사대가인 이식에게 “당대제일”이라는 인정을 받는가 하면, <용호>, <한강>의 시는 효종이 칭찬을 하며 “당시(唐詩)에 넣어도 손색이 없다”하였다.

여기서 백곡이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느 문인과 다른 백곡만이 가지고 있는 특질을 유의해 알아야 할 것인데,

우선 유학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던 당대의 일반 지식인들과는 달리 도학과 불교에도 친화를 보인 폭넓고 개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문학적인 면에서 백곡은 17세기 문학의 창작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시는 물론 문도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큰 성과를 남긴 문인이었습니다.

백곡의 시는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천기가 드러나고 실경의 묘사가 중심이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즉 천기를 중심으로 한 대내적인 자기 관조의 문학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실경의 묘사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또한 백곡은 시화집 《종남총지》를 저술하여 나름대로의 비평세계를 전개했는데, 거기서 그는 시를 인위적이며 도식적인 형식미보다는 내용의 진실성과 사실성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진보적인 시의식을 피력하는 한편,

시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고 그래야 시에 대한 감식안이 생긴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그의 시화집은 조선후기의 시화 중 비교적 내용이 전문적이고 주관이 뚜렷하여 시학연구에 훌륭한 자료로서, 우리나라 시문학사상 업적을 남긴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술을 의인화한 가전소설인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은 <국순전>·<국선생전> 등 고려의 한 시대에만 한정된 줄로 알았던 술 가전계통의 소설이 조선조에도 그 면모가 지속됐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백곡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백곡 김득신은 우리 증평군의 큰 자랑입니다. 앞으로 이번 시비 건립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백곡을 더 많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영동대학교 신범식 문학박사에 의하면, 

'억만재'의 '억'은 현재 숫자개념으로 이야기하면 '10만'을 뜻한다.

따라서  <백이전>을 무려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는 것은,

지금 숫자개념으로 하면 11만 3천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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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말?
진주 목사 김시민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김치의 아들? 그리고 오언 질언 절구? 질언? 증평문학인들의 수준? 증평군청 공무원 수준?
(2014-02-08 23:41:18)
다산은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서 "문자와 책이 존재한 이후 종횡으로 수천년과 삼만리를 뒤져봐도 부지런히 독서한 사람으로 김득신을 으뜸으로 삼을 만하다"고 극찬했다.
(2012-09-13 19: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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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 김득신 아버지(김치)의 묘에서 찍다.




나영순 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 증평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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