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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前 문화재청장과 함께 한 괴산 연풍 답사 이야기편집자주> 이 글은 우리지역 출향인인 '이 요안나 독자'가 보내온 답사후기와 사진을 정리한 것 입니다.
복덩이웅재 복덩이뉴스기자  |  bok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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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11  08:46:21  |  조회수 : 2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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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연풍면 원풍리 이불병좌상을 설명하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연풍동헌 풍악헌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의 한국미술사 강의(주최 학전)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2012.10.25~12.27일까지 10주 동안 매주 목요일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12월 8일(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한국미술사 강의 일환으로 월악산 일대와 괴산 연풍지역 문화유산 답사를 하게 되었다.

유홍준 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충북편>만 남겨놓고 있기 때문에 충북의 문화유산 확인을 겸해 충북을 답사지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오전 8시, 서울을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월악산에 있는 사자빈신사 터와 미륵리 절터였다. 미륵리 절터는 하늘재(한훤령)와 지릅재(계립령)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죽령 새재(조령)와 함께 사람과 물자의 주요통로로 다양한 문화가 교류한 지역이다.

미륵리 절터에는 석굴과 석등, 오층석탑, 돌거북 등이 있으며, 석굴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으며, 미륵불은 불교의 교리에 따라 북쪽을 향해 있다(미륵불은 북쪽, 여래상은 동쪽 등) 창건연대는 신라말에서 고려초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그 당시 사회혼란 등으로 미륵불이 가장 많이 모셔졌다. 또한 신라말기에는 지방호족들의 세력이 성장하면서 지역별로 독창적인 불상이 제작되었고, 조각수법이 소박하고 머리에 판석이 얹힌 점, 소략한 옷주름 등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석불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본존불과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벗어난 곳에 석등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돌거북은 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등위에 작은 새끼거북이가 귀엽게 새겨져 있다.

이어서 연풍면 원풍리에 있는 이불병좌상을 찾아갔다. 이불병좌상은 고려시대에 마애불로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형식이며, 보물 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은 암벽에 감실을 파고 나란히 앉은 두 불상은 석가불과 다보불이 크게 있고, 그 뒤로 5개의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는 불교의 7불을 표현한 것이다. 두 불상의 규모와 표정, 표현이 거의 같으나 오른쪽 불상의 코가 떨어져나가 서로 느낌이 다르다. 처음 봤을 때는 불상이라기 보다 신랑&신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불상 군데군데 총탄 흔적이 남아 있어 이화령 근처가 6.25전란의 격전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연풍면소재지에 있는 동헌(풍악헌)에 갔다. 현재 연풍초등학교내에 2백50년된 느티나무 2그루와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건너편 과거 포도청 자리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천주교 성지내에 향청이 복원되어 있었다.

연풍은 과거 단원 김홍도가 만3년 동안(1791~1795) 현감으로 있었던 곳이다. 단원 김홍도는 조선조 최고 불세출의 화가로서 조선 영조 21년에 태어나 21세에 도화서에 들어가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3번에 걸친 어진(왕의 초상) 제작에 참여하여 중인이지만 벼슬살이를 할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산수, 신선그림, 인물, 풍속, 화조, 동물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뛰어났으며, 유홍준 청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라고 하였다.

김홍도가 연풍현감으로 지내던 시절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김홍도가 현감으로 부임한 후 내리 3년동안 연풍을 포함한 삼남에 가뭄이 들어 기근이 심할 때 “연풍현감 김홍도 등은 일급, 이급의 재해를 입은 읍인데 나라곡식에 의지하지 않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곡식을 나누고 죽을 끓여 먹으며 정해진 규정대로 시행하여 굶주린 백성이 살아나게 되었으나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현감에게 상을 줄 정도는 아니다."고 되어 있다.

또한 1795년에 충청 위유사 홍대협은 연풍의 사정을 묻는 왕에게 “듣건대 김홍도는 한 고을의 수장으로서 잘한 일이 없고 중매나 일삼으며... 사냥을 한다고 장정들을 동원하고 빠진 사람에게는 벌로 세미를 거두어 고을이 소란하고 원망이 높으니 무거운 벌을 내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김홍도는 의금부 관리에 의해 끌려오는 신세가 되었으나 김홍도를 사랑한 정조는 연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홍도를 사면시켜 주었다. 이 시기 김홍도는 48세에 아들을 얻었다.

단원 김홍도의 생애를 구분함에 있어 연풍현감을 지내기전과 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기는 도화서 화원으로의 삶에 충실했던 시기이며, 후기는 무르익은 기량과 관직생활을 거치며 변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훨씬 개성적이고 자유로워졌다.

화원 시절을 거치며 화보와 선배들의 본을 따라 전통적인 산수와 인물을 익힌 단원은 금강산 등을 통해 조선의 산수와 만나고 풍속을 통해 조선의 인물을 얻어 만년에 이르러 그 모두를 아우르는 회화성이 뛰어난 개성적인 그림을 그려 '단원화풍'을 완성하였다.

유홍준 前 청장은 단원과 연풍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단원의 출생지나 사망년도 사망지 등이 모두 나와 있지 않으며, 안산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스승 표암 강세황을 만난 것이 지금의 안산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단원박물관이 세워지지 않고 있는데, 유홍준 청장은 기록이 확실한 연풍이 단원박물관을 지을 수 있는 유력한 고장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유홍준 청장은 이시종 충청북도지사를 통해 그런 제안을 하였고, 괴산군에서도 박물관 건립이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괴산군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위촉이나 회의 참가 등을 무성의하게 알려왔다고 한다. 이는 문화재청장을 지냈고, 문화유산에 대해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에 대한 큰 결례이나, 그 원인은 문화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산골마을인 연풍은 분지에 자리잡은 작고 예쁜 동네로 아주 가까이에 고속도로가 나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대단히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인근 문경새재와 연계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연풍이 단원 김홍도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세운다면 이 지역발전을 위해 대단히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단원의 작품을 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유홍준 청장은 디지털로 복원하는 계획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동헌과 함께 연풍초등학교에 박물관을 세워 건너편의 향청과 천주교 성지를 연결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향청은 조선시대 지역주민들이 모여 의논하는 곳으로 그 당시 지방자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답사팀 중에 구청장이 있었는 데, 구청장이 조선시대에도 이런 기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했다.

연풍 천주교 순교성지는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 이후 연풍땅에 와서 숨어살던 천주교인들이 순조 원년(1801년) 신유교난때 이곳 관아에서 처형당했던 장소이다. 성지에는 당시 교인들을 처형할 때 쓰던 돌이 있어 그 당시 끔찍함을 전해주고 있다.

향청과 천주교 성지를 둘러싼 담을 가리켜 유홍준 청장은 콩떡담장이라며, 큰 돌과 작은 돌이 조화로운 담장이어,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담장도 유홍준 청장의 해설과 함께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며 스토리텔링이 있는 우리 문화재를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며, 우리는 늘 보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고 그곳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생생한 답사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유홍준 청장과 함께 한 답사는 매우 재미있고 의미 있었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펴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충북편’을 기대하게 된다.

또한 답사기가 나올 때를 즈음하여 연풍에 그분이 소망하던 단원 김홍도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더욱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렇지않다면, 단원 김홍도 박물관 건립이 2014년 지방선거의 의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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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이불병좌상은 고려시대에 마애불로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형식이며, 보물 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은 암벽에 감실을 파고 나란히 앉은 두 불상은 석가불과 다보불이 크게 있고, 그 뒤로 5개의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는 불교의 7불을 표현한 것이다.

   
 
   
 
   
 연풍초등학교와 노거수
   
 연풍동헌 풍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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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가치가 충분한 콩떡담장
   
 
   

 향청은 조선시대 지역주민들이 모여 의논하는 곳으로 그 당시 지방자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은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 및 홍익대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발간하여 선풍적인 문화유산답사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권,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상, 하권, 화인열전 등이 있으며, 2012년 한국미술사 1,2권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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