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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이찬의 시조부(媤祖父)님 기일을 맞아 하고 픈 이야기복덩이뉴스 김정자 발행인
김정자 복덩이뉴스기자  |  jj2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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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9  12:04:31  |  조회수 : 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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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이찬의 독립유공자(3.1운동)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곳! 증평군 증평읍 남하 2리 둔덕마을, 전주 이씨 효령대군 참판공파 세거지

   

‘둔덕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는 웃골산 양지바른 곳에는 3기의 묘가 마을을 향해 나란히 줄지어 있다.

맨 위 산소가 1919년 3월 30일 청안 장터에서 항일시위를 벌이다 돌아가신 이찬의 독립유공자의 묘이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 노산 이은상 -

 

   
건국훈장 애국장
   
독립유공자 이찬자의자할아버지

독립유공자 이찬의 시조부(媤祖父)님 이야기
- 복덩이뉴스 김정자 발행인 -

사랑하는 손녀손자들에게

오늘은 너희 고조부님 찬(瓚)자, 의(儀)자 할아버지
기일(忌日)을 맞아
그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복덩이뉴스 김정자 발행인

너희들도 알다시피 ‘둔덕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는 웃골산 양지바른 곳에는 3기의 묘가 마을을 향해 나란히 줄지어 있지.

맨 위 산소가 1919년 3월 30일 청안 장터에서 항일시위를 벌이다 돌아가신 고조부님(이/찬자/의자) 묘이고,

그 다음이 1994년 정월 대보름을 눈앞에 두고 마을회관 옆에서 돌아가신 증조부님(이/기자/영자),

그리고 마지막이 1995년 3월 19일 경기도 포천 운악산에서 귀천(歸天)한 너희 할아버지(이강규) 묘이다.

할머니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가슴 저미는 고통과 슬픔을 느낀단다.

찬(瓚)자 의(儀)자 할아버지는 일본 헌병의 흉탄(凶彈)을 맞고 돌아가실 때, 연세가 인생의 황금기라 볼 수 있는 39세이셨고,

둔덕마을에는 사랑하는 부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3살박이 아들(증조부님)이 있었단다.

'어린 아들을 두고 어떻게 두 눈을 감으실 수 있었을까.'

찬자/ 의자 할아버지만 생각하면, 할머니는 지금도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껴.

할머니가 직접 그 어르신을 뵙지 못했지만, 어른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너희들에게 전해야겠구나.

너희 고조부님은 1878년 7월 15일 이/ 보자/ 우자 할아버지의 세 아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셨대. 칠척장신에 힘이 장사였다는 구나.

그 당시에는 논에 물을 대는 수멍을 돌로 막아 만드는데, 묘지 앞에 있는 비석만한 돌을 번쩍 들어 놓아, 마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는 구나.

깃대 뺏기 마을간 시합을 하면 고조부님이 깃대를 잡았는데, 우리 편 기를 뺏으러 오는 상대마을 사람을 한 손으로 집어 던질 정도였대.

고조부 아버님이 웃골산을 3형제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너희 고조부가 몸이 약한 3째 작은 고조부에게 가운데 부분을 양보하고 맨 윗쪽을 차지했다는 거야.

그래서 고조부님이 돌아가신 후, 증조부님께서 땔감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는구나.

할머니가 형제간 우애를 생각할 때면 항상 생각하는 이야기야. 그리고 너희 삼촌들에게도 항상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형제간 우애를 가르쳤어.

 

 

 

 

 

증평군민신문 제24호 2013년 1월자 3쪽에 실린 증평군의 인물 독립운동가 이찬의 - 증평군민신문에서는 찬자를 삼수변 찬澯(맑을찬)을 썼다.

찬자/ 의자 할아버지 아버님(창자/ 우자 할아버지)께서는 3형제(경의瓊儀,  찬의儀, 영의瑛儀) 모두에게 전주 이씨 뿌리(王)를 생각하라고 임금왕변을 붙여 이름을 만들었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찬瓚자를 쓴다.

 

당시는 나라가 어수선해서 그랬겠지.

고조부님은 항상 ' 나라를 위해 전장(戰場)에서 죽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이고 마땅한 일이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대.

고조할머니가 이 말씀을 너희 할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는 구나. 고조할머니는 너희 할아버지가 중학교 다니실 때까지 살아계셨단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된 삼일운동의 물결이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던 때였지. 우리 지역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이 거사를 준비했지.

벽초 홍명희 선생은 3월 17일-18일 괴산 인산리 자택에서 스스로 조선 독립 계획을 고취하는 선언서를 집필하여 숙부 홍용식, 홍태식 그리고 아우 홍성희 선생과 더불어 3월 19일 괴산 장날에 충북 지방에서는 최초로 만세 시위를 펼쳤지. 벽초 홍명희 선생 등 20명이 검거되자 그 아우 홍성희 선생은 3월 24일 장날을 기해 다시 대규모 만세 시위를 일으켰지.

그런 항일시위 소식은 평소 남다른 애국적 열정을 가지고 계신 너희 고조부님께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고조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3월 30일 청안장날을 맞아 너희 고조부님이 깨를 팔러 장에 가신다고 나가시는데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뭔가 굳은 결의가 있었다는 구나. 너희 작은 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깨자루에 태극기를 넣어가지고 길을 떠나셨다는 거야. 아마 작심(作心)하고 길을 떠나신 모양이야.

당시 청안장터에서의 항일시위는 군중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고 밤새 투석전이 벌어졌다는 구나. 청안주재소에서 진압할 수가 없어 청주 본서등지에서 일본헌병이 파견돼 진압했다니, 그 규모와 저항이 무척 대단했던 모양이야. 헌병주재소를 부수는데 일제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접근이 어려웠다는 구나.

그런데 고조부가 현청에 있는 큰 돌을 번쩍 들어 주재소를 박살냈대. 너희 고조부는 선두에서 맹렬하게 투석전을 벌리시다, 그만 일제의 흉탄에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구나. 그래서 괴산군청에 있는 고조부 사인(死因)이 투석전을 하다 돌아가신 것으로 돼 있어.

당시 일본헌병이 쏜 흉탄에 맞아 돌아가신 분이 6명이였고 다친 사람은 말도 못하게 많았다고 해. 집안에서 고조부 시신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분위기가 무척 살벌했다는 거야. 그래서 한밤중에 마을사람들이 관청에 갔더니 돌아가신 분 6명을 거적으로 씌워놨대.

그런데 체격이 남달리 크셨던 너희 고조할아버지만 발이 쑥 나와 있어서 바로 찾을 수가 있었대. 그리고 웃골산 왁박골에 묘를 썼지.

너희 고조할머니는 아침까지도 건장하셨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 점 혈육인 아들(증조부님)에게 무슨 해가 미칠까 애기만 부둥켜안고 현장에도 못가셨다는 구나.

아버지 없이 두 식구가 살던 이야기를 너희 증조부님이 허허 웃으시며 이야기하실 때면 가벼운 이야기도 목이 메어 들을 수가 없었지.

고조부님는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고 그리고 보훈청에서 돈이 나와 지금 있는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移葬)을 했어.

할머니가 이장할 때 가 보니, 뼈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굵고 길었어. 그때 옛날 어르신들이 너희 고조부님에 대해 하셨던 말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

참, 너희들이 기억할 일이 하나 있는데 고조부님 비문을 죽 읽다보면 '오호 통재라'하는 부분이 있어. '오호 통재라'하는 부분은 당시 붓글씨를 배우던 이 할머니가 넣은 거야. 너희 고조부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 그 말을 넣었지.

웃골산을 찾을 때마다 웃골산에 계신 그 분의 정신을 느낄 수 있어. 그 정신은 푸르디 푸른 절개, 애국혼, 헌신과 열정 같은 거야. 그 정신을 할머니는 '웃골산 청년정신(靑年精神)'이라고 부르지. 너희도 ‘웃골산 청년정신’의 후손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念頭)에 두고, 최선을 다해 살기 바란다.

너희 할아버지는 고조부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늘 영광으로 생각했고, 자주 했어. 그리고 그 분의 장손자라는 사실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지. 할아버지는 잘 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 아니라 '잘 되면 고조부 탓, 못 되면 내 탓이다'고 늘 강조했어.

너희들도 열심히 살아서 남들이 너희들을 존경하게 될 때, 그 때 웃골산에 가득한 너희 고조부님의 '청년정신(靑年精神)을 이야기 하도록 해라.

애국자로 살아도 한 생을 사는 것이고, 매국노 짓을 해도 한 생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순간을 살아도 애국자로 살겠다는 각오가 있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법이다.

사랑하는 손녀 손자들아!

인생을 살다, 평화와 정의의 길을 가다 힘들고 지칠 때면 너희 고조부 이름이 선명히 아로 새겨져 있는 괴산군 충혼탑 비문을 항상 읽고 또 읽어 보도록 해라. 할머니도 그 비문을 보며 많은 위안을 받았단다.

오는 가을 한가위 때에는 너희들과 청안동헌에 있는 만세운동유적비를 찾아 고조부님과 고난을 함께 했던 김수백(金壽伯)·이태갑(李泰甲)·신강면(辛康勉) 선생 등을 기리고 싶구나.

항상 웃골산 청년정신을 되새기며 독립유공자 후손답게 살도록 해라.

이만 펜을 놓으마.


이찬의 (李瓚儀) 애국장 (1991)
- 독립기념관 자료실
> 3·1운동 충북 괴산 <

이 찬 의(李瓚儀) 1878. 7. 15~1919. 3. 31 이명 : 燦儀

충청북도 괴산(槐山)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청안(淸安) 장날을 기하여 김수백(金壽伯)·이태갑(李泰甲)·신강면(辛康勉)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3,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주재소와 우편소로 행진하며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점차 시위군중이 격렬해져서 우편소와 주재소 등을 습격·파괴하자, 이에 겁이 난 일본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애석하게도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음.

   
충혼탑
   
잊지말아야 할 우리지역 독립유공자> 연병룡 연병호 임창무 이찬의 연병환
   
삼일공원> 삼일독립운동의거기념비 - 복덩이뉴스 박상은 지도위원이 충혼탑 참배 후, 삼일공원에 있는 삼일독립운동의거기념비를 가슴 뜨겁게 꼼꼼히 읽고 있다. 이 비문에는 3.1운동 당시 의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www.boknews.com
   
비문에 새겨있는 이찬의(李燦儀), 이태갑(李泰甲) 선생 ... 독립유공자 이찬의 선생의 찬자는 집안에서는 임금왕변을 넣은 찬(瓚)을 사용한다.
   

청안동헌 만세운동유적비> 동헌은 일제침략 후 헌병주재소로 쓰였다하니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지 알 수가 있다. 

동헌이 주재소로 바뀌였다는 것은 동헌의 주인 또한 바뀌였을 것이고,

통치 목적 또한 바뀌였을 것이다.

이 어찌 피눈물 나지 않을 일인가?

   
순국선열의 이름 뒤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가족들의 아픔이 배여있다.
   
 순국선열들 앞에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
   
찬자/ 의자 할아버지는
가족 화합과 단결의 구심이다.
2003년부터
매년 찬자/ 의자 할아버지를
기리는 모임을 갖고 있다
.
   
2003년 청천 솔뫼농장
   
좋은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거나
늘 찬자/ 의자 할아버지를 찾아
웃골산에 가득한 청년정신과
삶의 뿌리, 우리들의 근본을 생각해 본다. 
   
www.bo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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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찬자의자할아버지

증평군민신문 제24호 2013년 1월자 3쪽에 실린 증평군의 인물 독립운동가 이찬의 - 증평군민신문에서는 찬자를 삼수변 찬澯(맑을 찬)을 썼다. 집안에서는 찬자/의자 할아버지 아버님(창자/우자 할아버지)이 3형제 모두에게 전주 리씨 뿌리를 생각하라고 임금왕변의 제기 찬瓚자를 썼다.

복덩이뉴스 김정자
발행인 011-468-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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