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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어록비 제막복덩이뉴스 이웅재 편집실장&기자학교장 010-3434-0707
복덩이웅재 복덩이뉴스기자  |  bok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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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28  19:36:49  |  조회수 : 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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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목),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는 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애국지사연병환^병호선생선양사업회(회장 송기민) 주관으로 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어록비 제막식이 성대하게 거행됐다.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지사 연병환^연병호 선생의 높은 뜻을 선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증평군청 앞으로 모이고 있다.
   
애국지사연병환^병호선생선양사업회
   
천안 독립기념관 추모공원
   
좀 일찍 도착해 선생의 어록비를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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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어록비 아래에 행사장을 마련하였다.
   
 
   
 
   
 
   
"나라사랑에 너와 내가 따로 없지유~~.."
   
 
   
그분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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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약력 소개 및 경과 보고
   
애국지사연병환ㆍ병호선생선양사업회 연창흠 사무국장
   
 
아래는 이날 애국지사연병환^병호선생선양사업회 연창흠 사무국장이 소개한 연병호 선생 약력 및 경과 보고이다.

<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약력 소개 및 경과 보고>

선생께서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강탈당하자 형 연병환의 부름을 받고 1919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그해 3월 서울로 다시 잠입, 송세호 조용주 이병철 등과 함께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하여 외교시보를 발간하는 등 적극적인 독립활동에 앞장서셨습니다.
   

애국지사 연병환ㆍ병호 선생 선양사업회
연창흠 사무국장

 

그러나 불행하게도 애국부인회 사건을 수사하던 일경에 체포돼,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으며,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탈출, 1922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을 비롯해 (재)상해청년회, 시사책진회, 세계한인동맹회, 선비단, 신민부 등에서 활동하셨습니다.

1929년에는 한국혁명당을 조직하여 <독립공론> 주간으로 활동한 바가 있고, 1932년 10월 신한독립당 대표로 대일전선통일동맹에 참여하여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시고, 1935년 11월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였습니다.

1930년 3월 중국 항주 절강성에서 ‘한국독립운동의 전후 개황’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내용이 있지만 시간관계상 다 소개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지난 번 발간된 애국지사 연병환^연병호 전기에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선생께서는 1938년 2월 4일 한국혁명당 사건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했습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조국으로 돌아온 선생은 임시정부영수환국전국환영회 영접위원으로 활동하셨으며, 1948년 5월 10일 괴산군 선거구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하시기도 했습니다.

초대와 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셨지만 항상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시고 검소한 생활신조로 고난과 역경을 겪으시면서 일생을 사시었습니다. 1963년 1월 25일 부인 곽애섭 여사가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고향집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내가 가정을 돌보지 아니하고 나라일만 걱정했구나’라고 탄식하시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운명했으니 그날이 1963년 1월 26일 새벽 2시였습니다.

선생께서 1920년 3월 1일 애국애족정신으로 가득한 내용의 글을 독립신문에 기고하신 것이 있으니 그 전문을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한 이후 어언 1년이 되었다. 내일을 생각하면 비분과 희열(喜悅)의 쌍감(雙感)이 교차하도다.

지난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앞으로 우리의 목적을 완성할 도리를 생각하자.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일년동안 두게 한 것은 실로 성의가 부족함이다. 동포는 독립을 말로만 선언하려고 하느냐? 우리는 반드시 삼천리 조국 안에서 적을 종적도 없어 구축(驅逐)하여 나의 것을 내가 자주(自主)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멈칫거리며, 비싯비싯 지체할 것이 아니라 참 성력(誠力)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의 길이란 무엇이냐? 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독립운동에 각자 영웅적 사심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와 나의 몸을 멸망시키려는 왜적들의 철망 안에서 벗어나 살려고 함이니 사랑하는 형제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형제들의 몸을 묵묵히 찢어 바쳐야 될 것이다.

해적의 간교한 방해 중에서 정부의 처사가 쾌활(快活)치 못하다 할 것이 아니라, 동포는 군웅분기적(羣雄分旗的) 자벽(自僻)의 주장을 버리고, 천하에 발표하고 국내에 표치(標幟) 한 임시정부부에 심혈을 집중하여 일치한 행동으로 방적(防敵)할 것이며, 동포는 각각 별반쾌활(別般快活)한 정부의 출현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각자 필력(必力)을 내놓아 민쾌(敏快)한 정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동포는 별개 신장령졸(神將靈卒)인 독립군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천만이 자신하고 자강자진(自彊自進)하는 날 우리 국가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영생(永生)을 득하여 삼천리 강토에 오늘을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동포는 우리 국가독립에 남이 돈 줘서 쓰게 할 것으로 꿈같은 생각을 말고 각자 형제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힘을 발휘해야지 다른 사람의 힘을 믿지 못할 것이다.

동포여! 우리는 참담한 멸망을 면하여 자생(自生)을 도모하려 하니 싸우면 살고, 싸우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하물며 역천(逆天)하는 적의 패멸(敗滅)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함이다. 우리의 배달족 신남신녀(神男神女)는 이천만의 철혈(鐵血)을 일치 합하여 일거에 적을 파쇄(破碎) 무궁화 삼천리 조국의 국권을 광복하고 백두산 꼭대기 태극기 아래서 명년 금일을 기념하기로 신전에 맹서합시다.

1920년 3월 1일 연병호

독립신문에 기고한 글이 이상과 같은 내용이지만 그 중 일부분만을 발췌하여 비에 새겨 오늘 제막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비를 제막하기까지 곡산연씨대동종친회에서 오백만원을 지원해 주셨고, 저희 선양사업회 회원들의 출연금 천만원 등 총 천오백만원을 들여 대만민국에서 돌 좋기로 유명한 충남 웅천읍 금호석재에서 오석을 구입해 제작한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선양사업회에서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선생의 형제분들은 물론 연병환 선생님의 따님 연미당 선생에 대한 위대한 공적을 더 열심히 발굴하여 적극 선양할 것임을 약속드리면서, 이상으로 선생의 약력 및 어록비 건립 경과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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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민 애국지사 연병환ㆍ병호 선생 선양사업회장은 연병호 선생은 마땅히 국가적인 대우를 받을 만하며, 한 인간으로서도 가장 완성된 삶을 살으신 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송기민 애국지사 연병환ㆍ병호 선생 선양사업회장(전 증평문화원장)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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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칠 증평부군수
   
연규백 곡산연씨대종회장
   

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손자 연규은 선생> 애국자 후손답게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 일이라면 늘 언제나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날도 자비(自費)로 기념품을 마련해 참석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연규은 선생
   
증평에서 온 합창단이 ‘선구자’로 선생의 뜨거운 애국애족혼을 노래하였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고결한 애국애족혼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해, 애국지사들의 활동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록비 제막식이 거행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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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 비에 젖어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당기자 천이 물을 잔뜩 머금어 훌렁 나앉았다.
   
 
   
 
   
 
   
 
   
 
   
 
   

선생께서 언제나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고대하시어서 그랬는지, 이날 풍년을 부르는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비가 내려 어록비 제막은 어렵게 거행했지만 영원히 기억에 남을 행사가 되었다.

   

육군 37사단 군악대> 분위기 살리기에 언제나 최전선에 있다.

이날은 비도 내려 더욱 순국선열을 기리는 분위기가 장중하였다.

   
 
   
 
   

수 많은 애국지사들의 어록비가 모여 나라사랑을 다짐하는 명소가 되었다.

연병호 선생 어록비는 1백1번째 어록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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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 유성룡 선생 어록비
   
 
   
 
   
 성웅 이순신 장군 어록비
   
 13도의군도총재ㆍ성명회장 의암 류인석 선생 어록비
   

 한국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장군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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